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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9-29 11:12
조회
1365
                                                                                네덜란드 NETHERLAND


․수도 : 암스텔담(Amsterdam, 106만, 왕실소재)
․인구 : 약 1,550 만 명

․면적 : 41,548㎢ (내해수면 제외시 37,305㎢, 한반도의 약 1/5)

․주요도시 : 헤이그(The Hague), 로텔담(Rotterdam),

. 유트레히트(Utrecht)

․주요민족 : 화란민족(게르만족의 1개 분파)

․주요언어 : 화란어(영어, 불어, 독일어 통용)

․종교 : 카톨릭(32%), 네덜란드 개신교(17%), 비종파(38%)

․통화 : 1유로(EURO) = 1390원 (2021.11)


유럽의 관문이라는 지정학적 원인으로 로마, 프랑크 제국, 스페인,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으며, 프랑스로부터는 1815년에 독립했다. 계속되는 외세의 침입을 받아 오면서도 17세기에는 연합 동인도 회사를 설립해 해외에 많은 식민지를 두어 인도네시아 등 여러 식민지를 갖기도 했으나 현재는 모두 독립하고 카리브해 연안의 안틸레스 제도만 네덜란드 속령으로 남아 있다.

네덜란드는 생존을 위해 자연 환경, 특히 바다 즉 물과 끊임없는 투쟁을 해왔다. 제방을 쌓고 간척지 개발 등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현재의 네덜란드를 만든 것이다.

정치 형태는 내각 책임제의 입헌 군주국으로 15인의 각료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서비스 산업, 금융, 전기, 선박이며 주요 교역국은 독일, 벨기에, 프랑스 등이다.


[지 리]

유럽의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네덜란드는 벨기에와 독일 사이에 있다. 총 면적은 약 41,160㎢(한반도의 1/5)으로 전 국토의 25%가 해수면 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지역으로는 저지대가 계속 이어진다.

구릉 지대에 속해 있는 남동부지역 조차도 가장 높은 지점이 321m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으로 점토 층이 많으며 돌과 나무가 거의 없는 특색을 보인다.

[기 후]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비교적 포근한 서안해양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철의 평균기온은 17℃, 겨울은 2℃정도로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 강수량은 700mm 정도로 여름과 가을에 비가 많은 편이며, 안개가 많고 강한 서풍이 일년 내내 불어온다.

3-4월에는 날씨에 따라 기온이 많이 내려갈 수도 있으므로 바바리 코트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또한 남동 구릉지대는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 기온 차가 심하다.

                                                                                                                 

                                                                                                 암스텔담 AMSTERDAM


13세기에 어민이 암스텔 강에 둑을 설치하고 정착하게 된 것에서 유래된 도시명 암스텔담은 '암스텔(Amstel) 강의 둑'이란 뜻이다. 해양 무역의 황금기인 17세기 때부터 부채꼴 모양의 운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암스텔담은 운하를 연결하는 500여개의 다리가 볼만한 도시로 세계적인 무역, 관광의 도시이다.

유럽 대륙의 관문인 암스텔담은 도로, 철도, 항공등 교통의 요충지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다이아몬드 연마, 항공기 제작, 기계, 조선, 화학 등의 산업이 발달해 있다.

․암스텔담 월별 평균기온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기온(°C)

2.9

2.5

5.7

8.2

12.5

14.8

17.1

17.1

14.5

11.4

7.0

4.4

평균강수(㎜)

79.1

43.6

89.3

39.3

50.2

60.1

73.4

60.0

80.1

103.7

73.4

72.3



담 광장(Dam Square)


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담라크와 로킨 도로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광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 위령탑이 있다. 광장의 주위에는 왕궁과 신 교회 등 오래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Y자형으로 지나고 있는 암스텔 강을 막으려고 댐을 건설한 것이 지금의 광장이 된 것이다. 광장에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과 젊은 연인들, 비둘기들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운하(Grachten)


부채살 모양의 운하 주변에는 17-18C에 지어진 고급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으며, 섬세한 세공과 정면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주택의 공통된 독특한 양식은 건물 정면에 도르래가 달린 독특한 양식의 들보가 돌출해 있고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름다운 운하주변의 풍물들을 유람선을 타고 관광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풍차마을, 잔세스칸스 (De Zaanse Schans)


풍차마을로 널리 알려진 잔세스칸스는 암스텔담 북쪽 약 1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화나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크고 작은 풍차들이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잔 강변을 끼고 풍차 4기가 돌고 있다. 풍차 외에도 나막신과 치즈를 만드는 곳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Anne Frank Huis)


1635년에 세워진 상점 건물로 1942년 독일계 유태인이었던 안네의 아버지와 그의 일가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숨은 곳이다.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1일 나치군에 의해 연행되기 3일전까지 쓰여져 있다. 사무실로 쓰였던 앞 건물과 안네가 숨어 있던 뒷 건물은 회전식 책장으로 위장되어 있으며, 안네가 거처하던 다락방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현재 앞 건물은 나치정권의 학살에 관한 잔혹한 자료와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는 자료관이다.


라이크스 박물관(Rijksmuseum)

빨간 벽돌로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1808년 루이 보나파르뜨에 의해 제안되어져 1885년에 완성되었다. 박물관에는 15-19C에 이르는 많은 예술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회화는 2층, 조각․장식미술은 1층․2층․지하층으로 구분되어 전시되고 있다.

                                                                                                              로테르담 ROTTERDAM

라인 강과 마스 Mass 강이 만나는 이중 삼각주에 발달한 로테르담은 바다에서 30km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북유럽 제일의 무역항이다. 로테르담의 광장에 있는 쟈트킨이 제작한 「심장을 뽑힌 남자」 상(像)은 1940년 5월 14일 독일군의 공습으로 도시의 반을 파괴당한 비극의 상징으로, 공포와 절망에 양손을 허공으로 뻗고 있는 이 사람의 심장은 속이 텅 비어 있다. 그러나 이 황폐한 가운데서도 로테르담은 다시 일어섰다. 인구가 100만을 넘고 ‘유럽의 항구’로서 군림하고 있다.

                                                                                                                 헤이그 DEN HAAG

수도는 아니지만 헤이그는 국회와 각국의 대표기관이 있어 네덜란드 행정의 중심지로 되어 있다. 또한 구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철수해 온 과거의 대상인들의 거주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전체적 분위기는 고상하고 호화롭다. 대로에는 아름다운 가로수가 이어지고 공원의 못에는 백조가 헤엄치고 있다. 그리고 마우리츠 호이즈 Mauritshauis 미술관에는 렘브란트, 헤르메르, 얀 스텐 등의 플랑드르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헤이그 근교 마두로담Madurodam의 미니어처 타운은 네달란드다운 건물을 정확하게 재현해 놓아 그 가운데를 걸리버 같은 기분으로 걷는 것,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벨기에 BELGIUM


․ 수도 : 브뤼셀(Brussels, 100만)
․ 인구 : 약1,015만명

․ 면적 : 30,519 km2 (경상남북도 크기)

․ 주요도시 : 안트워프(Antwerp), 리에즈(Liedge), 강(Ghant), 몽스(Mons)

․ 주요민족 : 플라망족(55%, 화란어 사용), 왈롱족(44%, 불어사용)

․ 주요언어 : 북부 화란어, 남부 불어, 브뤼셀에서는 두 언어 공동사용

․ 종교 : 카톨릭(80%)

․ 통화 : 1유로(EURO)=1390원 (2021.11)

해마다 천 삼백 만명의 방문객을 맞는 벨기에는 관광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나라이다. 국토의 면적은 좁지만 나라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인 기념물이 곳곳에 보존되어있다. 남부지방의 낮은 구릉지대에는 아름답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Ardennes Lolligas 가있으며 북해 쪽에는 중세기의 찬란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브뤼헤와 겐트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벨기에의 수도이며 국토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있는 브뤼셀도 이들 도시에 뒤떨어지지 않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도시 곳곳에 나타내고있는 화려한 도시이다.

벨기에는 풍부한 석탄을 기반으로 공업국으로 발전해 왔으며, 특히 광업에서는 세계정상을 차지해왔다. 근대에 와서는 화학 공업, 석유화학 공업, 자동차 공업이 급속히 발전하여 산업구조가 변경되는 추세이다.

                                                                                                              브뤼셀 Brussels

EC 본부가 있는 브뤼셀은 서유럽의 역사와 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플랑드르 Flandre 문화가 담긴 고도(古都)이기 때문에 특히 중세사에 흥미있는 사람에게는 끝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 브뤼셀 월별 평균기온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기온

(°C)

3

3

6

8

12

15

17

17

15

11

6

4



브뤼셀 모든 것의 중심, 그랑 플라스 (Grand Place)


그랑 플라스(Grand Place)는 브뤼셀의 중심부이며 이 도시의 시작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에 하나인 이곳은 인간이 만들어낸 건축물의 경연장 같기도하다. 시청사의 고딕양식, 길드조합의 바로크양식, 르네상스양식 등 각종 화려한 건축기술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치 옥외극장과 같은 곳이다. 일요일 아침 꽃시장이 이 곳에서 열리고 각종 새들이 지저귀는 새시장 또는 정치의 집회장이 되기도하며 재즈음악의 공연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7월 첫째 주에 열리는 브뤼셀 최대의 축제 오메강 축제(Ommegamg Festival)의 시발점이 되는 곳 이기도하다.
브뤼셀 시청사 (Brussels City Hall)


그랑 플라스 광장에 브뤼셀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 있는데 275피트 건물 꼭대기에 악을 물리치는 브뤼셀의 수도신인 성 미카엘의 구리동상이 서있는 시청사(Hotel de Ville)가 그것이다. 1402년부터 1455년까지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각방에는 색실로 아름다운 무늬를 짜넣은 직물류의 벽걸이들이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다. 시청사의 오른쪽 맨 아래에는 여행정보센터가 있어 각종 공연물의 안내와 교외단체관광, 시내 지도, 숙박 정보 등을 알려주고 있다.
생 미셸 성당 (Cathedral St.Michel)


생 미셸 성당(Cathedrale St.Michel)은 중앙역에서 북쪽 방향으로 걸어가면 그 정면의 모습이 매우 특이한 성당이 나온다. 13-16세기에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중앙 스테인레스 창의 합스부르크의 막스 밀리언과 그의 부인의 그림은 스테인레스 창의 최고 결정체로 알려져있다.
오줌싸개 동상(Manneken Pis)


혹자는 예상보다 훨씬 작은 오줌싸개 동상에 대해 실망을 느낄지도 모른다. 브뤼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오줌싸개 동상은 1619년 제롬 뒤케노스에 의해 만들어 졌다. 꼬마 쥘리앙이라는 애칭으로 불릴만큼 브뤼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관광차 브뤼셀을 방문한 이들은 오줌싸개 동상이 얼마나 자주 옷을 갈아입는지 모를 것이다. 왕의 집(King's House), 그랑 팔라스, 시청에서 보관하고 있는 쥘리앙의 의상은 미키마우스 복장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복장 등을 포함해 600벌이 넘는다. 1698년 네덜란드 총독을 시작으로 브뤼셀을 방문한 많은 국빈들이 꼬마 쥘리앙을 위해서 옷을 만들어와 입히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다.


                                                                                                               브뤼헤 Brugge

브뤼헤는 ‘천정없는 미술관’ 또는 ‘박물관’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거리가 예술품으로 가득하다. 그림 같은 운하, 교회의 탑, 수도원의 기념비 등 고풍스러운 자태의 옛 모습을 그대록 간직하고 있다.

로덴바하는 그의 작품 ‘죽음의 도시 브뤼헤’에서 이 도시에 있는 수많은 탑의 그림자가 주는 압박은 매우 괴롭다‘고 나타내고 있다. 이 글처럼 브뤼헤에는 실로 첨탑이 많다. 생 상 사원, 노트르담 사원, 그리고 광장의 종루 등이 눈에 들어온다고 할 수 있다. 특히 Markt 광장 Grand Place 의 종루는 벨기에의 수많은 종루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1282년부터 14년이 걸려 4각의 밑 부분이 만들어졌고, 정상의 8각형 탑은 200년 후인 1482년에 증축되었다. 브뤼헤의 번영의 상징으로서 오늘날도 종을 계속 울리고 있다.

Burg 광장


Burg광장에 시청(Hotel de Ville)과 성혈예배장이 있다.

13세기 고딕식 건축 양식으로 벨기에에서 제일 오래된 시청 건물인 브뤼헤의 시청은 19세기에 재건, 건물 정면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중세에는 협동조합(Guild)으로 사용되었으며, 시청주변은 Brugge 도시 형성의 시발점이 되었고, 시청광장에서 야외 증권거래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베긴회 수도원 (Begijnhof)
사랑의 호수 맞은편에 흰벽돌집들로 구성된 베긴호프는 1245년 플랑드르 백작부인에 의해 설립된 수도원이다. 부녀자들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던 곳으로 주로 병자간호, 종교 교육에 전념하고, 보호자가 없는 소녀들을 집단 수용하였다. 현재는 베네딕트(은폐생활) 수도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담한 수녀들의 집이 넓은 안뜰을 둘러싸며 서 있고, 봄에는 수선화 꽃들이 주변의 경관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룩셈부르크  Luxembourg


․ 수도 : 룩셈부르크(Luxembourg, 78,000명)
․ 인구 : 약 42만명

․ 면적 : 2,586 km2 (제주도의 2배)

․ 주요민족 : 룩셈부르크인, 독일인, 프랑스인

․ 주요언어 : 불어(공용어), 독어, 룩셈부르크 방언

․ 종교 : 카톨릭(97%), 개신교 (1%)

․ 통화 : 1유로(EURO)=1,370원 (2012.12.)


[개 요]

유럽 북서부의 내륙국으로서 북쪽으로는 벨기에, 동쪽으로는 독일, 남쪽으로는 프랑스의 3개국에 둘러싸여 있다. 북위 49°27′~ 50°11′, 동경 5° 44′~ 6°32′에 위치하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높은 산이 없는 평탄한 지대로서 벨기에 남동부에서 룩셈부르크 북부까지 평균 고도 약 450m의 아르덴 고원이 전 국토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남부에는 프랑스의 로렌 평야에서 계속되는 평야지대가 비옥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국토의 남서단은 제철지대로서 인구밀도가 매우 높다. 동쪽으로는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모젤강 및 우르 쉬르 강에 의해 독일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해발 최고 지점은 북부 고저의 599m이고 최저 지점은 모젤 강 지역 마을의 130m이다. 최대 길이가 남북으로는 82Km, 동서로는 56Km이다.

[기 후]

전형적인 내륙성 기후이면서 습도가 높은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의 중간인 온화한 온대 기후이다. 평균 기온은 8℃정도로 가장 기온이 낮은 달은 1월로 1.0℃이고 가장 높은 달은 7월로 16.8℃이다. 연간 강우량은 1000mm이상으로 비가 자주 내리며 강우량이 가장 많은 달은 4월로 122.5mm이다. 습도가 매우 높아 룩셈부르크의 평균 습도는 약 81%이다. 여름 평균 기온은 18℃이고 겨울에는 0℃이다. 내륙 지방이고 일조량이 적기 때문에 겨울이 길고 추운 편이다. 북부 지방인 아르덴 고원이 남부 지방보다 높은 지대이어서 평균 기온이 1~3℃정도 낮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또한 고지대이기 때문에 아침과 오후,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심하다. 남부 지방은 온난하여 포도의 생산지이다.

․룩셈부르크 평균기온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기온

(°C)

0

1

5

7

12

15

17

17

13

9

3

1

강수량(mm)

66

53

55

53

66

66

68

68

63

68

71

73



[역 사]


로마에게 지배를 받던 기원전 57~50년 경부터 이 지역에는 벨기에 종족인 트레베리 족이 거주하기 시작하여 과수원이 성행하였고 하천이나 계곡 등지에는 로마인의 별장이 건설되었으며 장원제가 시행되었다. 이 시기에 현재의 룩셈부르크 시는 프랑스 및 벨기에 지방을 연결하는 고대 로마 2개 도로의 분기점이었다. 4세기 이후에는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450년 경 프랑크 족이 정착하여 아우스트라시아 왕국 및 샤를마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 때 정착한 2개의 하천이 현재 프랑스어와 독일어의 경계가 되고 있다. 이후 이 지역은 세부분으로 나누어졌다. 963년에야 비로소 독립체로서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는데 현재의 Luxembourg라는 국명은 이 시기에 이름 붙여졌던 '작은 성'이라는 의미의 Lucilinburhuc가 변화하여 지어진 것이다. 1060년 지크프리트 백작의 후손인 콘라트가 룩셈부르크 백작의 칭호를 얻었고 당시 독일의 현저한 세력 확장으로 신성 로마 제국이 건설되었으나 11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일어난 로마 법왕의 교권(敎權) 대립으로 국내 귀족들의 세력은 점점 커져갔고 룩셈부르크 백작도 그들과의 전쟁 및 결혼을 통해 점차 영지를 넓혀가기에 이르렀다. 14세기에 이르러 룩셈부르크 家는 새로운 중세 시대를 열어간 앙리 7세를 포함하여 4명이 독일 황제 자리에 올랐고 4명이 보헤미아 왕, 1명이 헝가리 왕이 되는 등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하인리히 7세는 보헤미아를 포함하여 아들에게 세습재산을 물려주었다. 또한 보헤미아 왕이었던 칼은 프라하를 파리와 같은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보헤미아 왕이었던 샤를르 4세의 통치 아래 룩셈부르크는 후국(侯國, duche)이 되어 유럽을 지배하였으나 이로 인해 재정이 부족해지고 국가의 세력이 급속히 쇠퇴하여 결국 1443년 부르고뉴 家에게 정복당하였다. 이후 19세기까지 약 400년 동안 룩셈부르크는 부르고뉴 家를 비롯하여 스페인,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家, 프랑스, 프러시아 등 20여 차례에 걸쳐 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특히 루이 14세 시대 '北의 지브롤터' 라고 불리며 중요한 전략적 시가 된 룩셈부르크는 이를 둘러싼 다른 나라들 간의 대립으로 국토는 나날이 황폐해져갔다. 1830년 네덜란드의 빌렘 1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룩셈부르크는 런던회의 결과 국토의 1/3은 벨기에에게, 나머지 2/3는 네덜란드에게 분할되는데 대공국으로서 네덜란드의 지배는 1867년까지 계속되었다. 1842년 독일 관세 동맹(Zollverein)에 가입한 룩셈부르크는 독일 연방국들간의 관세장벽 철폐로 획기적인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1867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빌렘 3세와 밀약을 맺어 오스트리아 아래에서 나날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프러시아 주둔군을 철수시키려고 하였으나 오스트리아는 룩셈부르크를 넘겨주려 하지 않았고 프랑스는 이를 매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프러시아와 전쟁 발발의 위기까지 갔으나 영국, 오스트리아 등 다른 유럽 열강들의 평화유지 노력으로 전쟁은 피할 수 있었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룩셈부르크에서 프러시아 군을 철수시키는 것과 동시에 룩셈부르크가 프랑스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유럽 열강 9개국과 함께 런던조약을 체결하여 룩셈부르크의 영세중립을 선언하였다. 이와 함께 룩셈부르크는 정식으로 독립을 얻을 수 있었다. 이어 룩셈부르크는 홀로 독일 관세동맹의 후신인 북독일 관세동맹에 가입하였으며 독일제국 성립 후에는 이와 관세동맹을 체결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룩셈부르크는 독일의 침략을 받았으며 전후에는 바일부르크 家의 지배 아래 Marie Adelaide 대공비로부터 Charlotte 대공비로 대공의 지위가 계승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룩셈부르크는 독일에게 점령당해 정부는 영국으로 망명하였고 국민들은 고난을 겪었다. 전후 해방과 동시에 미국의 마샬 계획과 다른 나라의 보조로 경제부흥을 이룩하였으며 1948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영세중립을 포기하고 이후 여러 서방진의 국제기구에 가입하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인 종]

오랫동안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적으로는 독일계의 게 만족이 대부분이고 쓰이는 언어도 게르만계의 룩셈부르크어이다. 기질도 라틴계와 다르지만 문화적으로는 프랑스에 가장 가까우며 종교도 대부분 가톨릭교이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게 침략 당한 바 있는 룩셈부르크에서는 독일에 대한 국민 감정이 그다지 좋지 않으므로 유의하는 것이 좋다. 그 밖에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소수 민족들이 뒤섞여 있다.

[인 구]

인구는 1994년을 기준으로 약 401,900명 정도이며 이 중에서 룩셈부르크인이 274,000명 정도이고 외국인이 125,000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1/3을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절반 이상이 노동자인 이들 외국인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2개의 유럽인이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그 밖에 프랑스인, 벨기에인, 독일인이 있고 최근에는 유고 난민도 1400명 정도 받아들였다. 최근의 인구 증가를 보면 인구 성장률이 0.8%로 극히 낮아 룩셈부르크인은 감소하고 있는데 비해 외국인 수가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국의 이민이 계속되고 있다. 인구 밀도는 389명/km2로 매우 높고 북부 지방이 낮은데 비해 특히 남부 지방의 인구 밀도가 높다. 인구는 Luxembourg와 Esch 두 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지역에 전체 인구의 26% 정도가 모여 살고 있고 인구의 2/3가 도시에 거주한다. 다른 유럽국에 비해서 노년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언 어]

게르만계의 방언인 룩셈부르크어가 국어이고 일상어로 쓰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프랑스어 및 독일어와 영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 통용되어 언어상의 어려움은 없다. 프랑스어는 주로 법정이나 의 등의 관공서에서, 독일어는 교회의 식사(式辭) 및 신문, 출판물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룩셈부르크어는 일상 회화에서 많이 쓰인다. 최근에는 국어를 중요시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공식 석상에서 룩셈부르크어의 사용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민 족]

여러 민족의 혼혈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구의 약 85%가 다 의 독일계 및 소수의 프랑스계, 벨기에계, 이탈리아계의 룩셈부르크인이고 나머지 15%는 벨기에인, 프랑스인 등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독일계 및 라틴계]

이들의 선조는 켈트족, 리구리아인, 로마인, 트레베리족, 프랑 족이 그 선조이며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은 게르만계의 룩셈부르크어인 모젤 프랑크어이지만 민족 구성상 프랑스어, 독일어도 공용어로 쓰이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교 신자가 대부분이다.

[외국인]

외국인의 대부분은 서유럽이나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지에서 온 가톨릭 교도들로 근로자가 많다. 최근들어 외국인의 수가 더욱더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Notre Dame)
남부 룩셈부르크 원래 예수회 교회였고, 그 초석은 1613 년에 마련되었다. 룩셈부르크에서 유일한 성당이다. 교회는 후기 고딕 양식이며 많은 르네상스 요소와 장식을 가지고 있다. 18세기 말, 교회는 도시와 국가의 수호 성인인 마리아 콘솔라트릭스 아플리토럼의 기적적인 이미지를 받았다. 약 50년 후, 교회는 성모 교회로 헌납되었고, 1870년에는 교황 피우스 IX가 노틀담 대성당으로 승격했다. 대성당의 묘지에는 저항과 추방에 대한 국립 기념물이 있다. 기념물의 중심은 정치 범이라고 불리는 20 세기 룩셈부르크 조각가  베르콜리에의 유명한 청동 기념물이다. 대성당은 1935년부터 1938년까지 확장되고 확대되었다.
왕궁 (Palais Grand Ducal)
룩셈부르크의 수도인 룩셈부르크시에 위치한 궁전이다. 룩셈부르크의 국가원수인 대공의 관저이기도 하다. 왕실의 고향 이며 윌리엄 I (1772-1843), 네덜란드의 왕과 룩셈부르크의 그랜드 공작 (1815-40)의 거처하기도 했다. 궁전은 1572년부터 지어졌으며, 이후 1895년에 증축 되었다. 1990 년대에 보수 공사가 완료 되기도 했다.
국립역사 박물관 (Musee National d'Histoire et des Art)
국립역사미술미술관에 소장된 귀중한 유물과 미술품을 통해 룩셈부르크의 역사를 시대별로 감상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 설립된 미술관의 전문 전시품에는 고고학 유물, 미술품, 시대별 공예품, 골동품 동전 등이 있다. 정육면체 모양의 현대적인 건물에 들어서면 불빛으로 가득 찬 전시관 홀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미술관에서 모더니즘 걸작품, 후기 인상주의 수채화와 조각상을 포함해 룩셈부르크의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수 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지하로 통하는 동굴 모양의 방들에서 고고학 발굴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갤러리는 건물 초석 아래에 만들어져 웅장한 골동품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선사 시대부터 중세까지 발굴된 도구, 도자기, 모자이크와 조각상 등 다양한 고고학적 유물을 구경해 보세요. 복원된 거주지와 동전 메달 전시관을 둘러보며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로마 유물과 화폐를 포함해 기억에 깊이 남는 소장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보그포대 (Casemate du Bock)
룩셈부르크 시의 역사 지구의 북동쪽 구석에있는 산책로 이다. 자연적인 요새화를 제공하는 바위 절벽은 알제트 강위의 타워로, 3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그프리드 백작이 963년에 루실린부후크의 성을 건설하여 룩셈부르크가된 마을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수세기 동안, 보크와 주변 의 방어는 강화, 공격, 그리고 부르고뉴의군대로 다시 시간과 시간을 재건했다, 합스 부르크,스페인, 프로이센,프랑스는 유럽의 가장 전략적 요새 중 하나를 통해 승리를 위해 vied, 룩셈부르크의 요새. 1867년 런던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전쟁은 멈추지 않았으며, 요새 철거를 촉구했다. 오래된 성의 유적과 케이스 메이트로 알려진 통로와 갤러리의 광대 한 지하 시스템은 주요 관광 명소이다.
아돌프 다리 Pont Adolphe
룩셈부르크의 수도인 룩셈부르크에 있는 다리인데 아치교로, 높이는 46m, 길이는 153m이며 룩셈부르크 시가지의 리베르테 거리를 지나서 페트루세(Petrusse) 계곡의 아르제트강(江)에 있다. 아돌프 대공작이 통치하던 시기인 1889~1903년에 건설되었고, 재료는 석재를 사용하였다. 설계자는 폴세주르(Paul Sejourne)이며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교였으므로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