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Information

여행정보 / 관광지

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

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6-22 16:08
조회
1467

 
스페인 SPAIN


◈ 수도 : 마드리드(Madrid, 470만명)

◈ 인구 : 약 3천 900만명

◈ 면적 : 501,788 km2 (한반도의 2.3배)

◈ 주요도시 : 마드리드(Madrid), 바르셀로나(Barcelona),

발렌시아(Valencia), 세비야(Sevilla), 사라고사(Zaragoza)

◈ 주요민족 : 가스띠야족(Castellanos), 바스꼬족(Vascos),

갈리시아족(Gallegos),안달루시아족(Andaluces)

◈ 주요언어 : 스페인어

◈ 종교 : 로마 카톨릭

◈ 통화 : 1유로(EURO)= 약 1,350 원 (2021.11.기준)

[역    사]

스페인에서 3만-1만 5000년 전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발견되므로 그 당시부터 인간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대 로마․게르만족에서부터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침략을 받아 왔으며,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5C중엽에 서고트인들이 이곳에 왕국을 세웠다. 이후 15C까지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1442년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국왕 페르디난도의 결혼으로 통일국가를 이루게된다. 19C에 이르러 나폴레옹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끈질긴 저항운동이 펼쳐졌으나 이후 1936-39년간 스페인 내란이 발생했다. 결과는 프랑코 총통이 이끄는 군부의 승리로 끝나게 돼 1975년 총통 사후까지 독재정치가 계속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된 위치에 놓이게 된다.

현재는 입헌군주국으로 민주주의에 기초를 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국회는 2원제이다.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유럽 중에서 농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며, 소맥, 감귤류,포도, 올리브 등이 유명하다. 또한 680㎞에 달하는 대서양의 천혜의 어장으로 원양어업 및 근해 어업이 모두 활발하다. 대표적인 공업으로는 기계, 조선, 섬유 등이나 무엇보다도 관광산업이 중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

[지   리]

총면적은 50만 4788㎢이며, 한반도의 약2.5배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인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북동쪽은 피레네 산맥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접해 있고 북서쪽은 대서양에, 동쪽으로는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다. 남서부로는 포르투갈과 국경을 이루며, 아프리카 대륙과 접하고 있다.

[기   후]

특색있는 지형과 해류의 영향으로 다양한 기후를 나타낸다. 북서부의 대서양 연안은 온난한 해양성기후로 비가 많으며, 마드리드를 포함하는 중부 고원지대와 남서부는 대륙성의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또한 남동부의 지중해 연안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일년내내 온난하다. 스페인 내륙 및 남부의 여름 햇빛과 더위는 너무 강렬해서 반드시 모자나 선글라스를 착용하여야 한다. 의류는 한국의 계절과 비슷하게 준비하면 된다.

[사회문화]

인구는 약 3,900만명으로 라틴계 스페인인이 주를 이루며, 원주민인 이베리아인, 로마인, 게르만인, 아랍인 등 다양한 종족의 혼혈이 많다.공용어는 스페인어(카스티야어)이며, 이외에도 지역적으로 북부에는 갈리시아어, 동부에는 카탈루냐어가 사용되고 있다. 플라멩고를 비롯한 많은 민속무용이 발달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아랍풍의 다양한 양식으로 건축술이 발달했고 가우디와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도 배출되었다.


마드리드 Madrid


1581년 스페인 제국의 전성기에 마드리드를 수도로 정한 이래 400여 년 간 스페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유럽의 타 국가의 수도 중 가장 높은 고지대인 해발 646m에 자리하고 있는 고원도시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드리드는 유럽 문명과 오리엔트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어 그 매력을 더하고 있으며,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미술관, 박물관,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고, 거리에는 옛날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현대적인 빌딩거리가 펼쳐지며 교외에는 공장과 고층건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주변으로 팽창해 나가는 대도시의 추진력과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마드리드의 기후는 맑은 날이 많으며, 고원도시인 까닭으로 한서의 차가 극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에는 무척 더우나 공기가 건조하여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겨울에도 바람이 없는 날이면 큰 추위는 느끼지 않는다.


왕궁 (Placio Real)

동방의 궁이라고도 불리우며 1738년 펠리페 5세의 지시로 이탈리아의 건축가인 사케티에 의해 1764년에 완성되었다. 전체 길이가 131m로 웅장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마드리드에서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이다. 왕궁 내부에는 2,800여개의 화려하게 장식된 방이있으며, 왕궁 앞뜰과 안뜰에는 스페인 왕, 스페인 태생의 로마 황제의 동상이 서있다. 보안상 관광객들이 마음대로 관람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가이드가 동반하는 관람은 가능하다. 또한 왕궁 주변에 있는 부속 미술관, 도서관, 무기박물관의 관람도 가능하다.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수세기 동안 마드리드의 중심부가 되어온 마요르 광장은 펠리페 3세에의해 1619년에 완성되었으나, 오늘날의 모습은 1790년 대화재로 건축한 것이다. 중앙에 17C에 만들어진 필리페 3세의 기마상이 서있는 광장으로 주변에는 17C에 건축된 오래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폭 94m, 길이 122m의 장방형으로 1619년에 만들어진 이래 국왕의 취임식과 종교의식 투우와 교수형, 각종 이벤트 행사가 열렸으며, 현재는좋은 산책로로 사용되고 있고, 일요일에는 우표, 주화, 파이프 등을 파는 시장이 열린다.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na)

마드리드를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누는 기준로인 그란비야 대로의 끝쪽에 위치한 광장으로 1916년, "돈 키호테"를 쓴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광장의중앙에는 말을 타고 있는 돈키호테와 나귀 위에 올라탄 산초 판사의상이 세워져 있고 마치 자신이 만든 소설의 주인공들을 내려 보기라도하는 듯 그 윗부분에는 세르반테스의 상이 있다. 광장 후면으로 보이는건축물은 1950년대에 Otamendi 형제에 의해 설계된 Edificio Espana와Torre de Madrid로, 총 27층으로 이루어진 이 곳은 현재 아파트 및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프라도 미술관 ( Museo del Prado )

에스파냐 왕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1819년 페르난도 7세 때 건립되어왕립 프라도미술관이 되었고, 1868년 혁명 후에 국유화되어 프라도로이름이 바뀌었다. 건물은 카를로스 3세 때 비라누에바의 설계로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자연과학박물관을 만들 예정이었으나 뒤에 미술관으로자리를 굳혔다. 수집품은 중세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에스파냐 및 유럽 여러 나라의 회화에 중점을 두고, 그 중에서도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 등 3대 거장에 관해서는 질 ·양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레도
Toledo

수도 마드리드 남서쪽 70km 지점에 위치하는 관광도시이다. 타호 강(江) 연안에 있으며 역사·미술적으로는 마드리드를 능가하기도 한다. BC 2세기에 로마의 식민도시가 되었고 8∼11세기에 고트의 중심지로서 발전하였다. 이어 이슬람 세력의 침입 이후에는 톨레도 왕국의 수도로서 상공업 중심지가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무기 생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카스티야 왕국의 문화·정치의 중심지로서 더욱 발전하였다.

1560년 펠리프 2세의 마드리드 천도로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였다. 13세기의 고딕식 성당, 무어풍(風)의 왕궁과 성벽, 유대교회 등 이색 건조물이 많다. 박물관에는 E.그레코, 고야, 반 다이크 등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으며 그레코의 집은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톨레도의 검(劍)’은 지금도 유명하며 섬유·도기 등의 경공업이 이루어진다. 또 주변에서 산출하는 양·말 등의 가축, 곡물·포도주·과일 등의 농산물과 광산물의 집산지이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톨레도 대성당 (Catedral de Toledo)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톨레도에 위치해있는 성당으로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이다.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건물은 프랑스의 고딕 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266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493년에 완공되었으며, 길이 113m폭 57m 중앙의 높이가 45m로 완공된 후에도 수차례 증개축을 했지만지금도 기본 골격은 변함이 없다.

중앙에 있는 면죄의 문, 왼쪽에 있는 시계의 문, 오른쪽에 있는 사자의 문으로 되어 있는 3군데의 입구가 이색적이다.

산토 토메 교회 (Igesia de Santo Tome)

1586년에 완성된 엘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 그림이 있어유명한 산토 토메 교회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그림을 보기 위해 많이찾는 곳이다. 이 그림은 상하 2단으로 나뉘어 있으며 상단부는 천상계를 하단부는 지상계를 상징하고 있다.

중앙에는 천사가 팔을 감싸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이는 오르가스 백작의 혼을 표현한 것이다.


코르도바 Cordoba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코르도바는 로마인과 이슬람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이다. 이 도시는 수세기에 걸쳐 흘러들어온 다양한 문화로 인해 문화적으로 풍요로울 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한가운데에 기독교 성당이 들어서 있는 Aljama 모스크가 역사적인 유적지의 가운데 들어서 있는 곳에서 다른 문화의 공존을 느낄 수 있다.

스페인 이슬람교의 중심지였던 메스키타 회교사원(Mezquita)

영국 작가 제럴드 브레넌은 이 인상적인 아라비안 모스크를 스페인 전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평했었다. 23,000평방 미터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회교사원이며 로마, 고딕, 비잔틴, 시리아, 페르시아 요소들이 혼합된 칼리프 스타일로 모든 아라비안-라틴 아메리카 건축물의시작점이기도 하다.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메스키타 회교사원은 스페인 이슬람교의 중심지였다. 785년과 787년 사이에 건축된 건축물로 점차적으로 개축되어 여러가지의 다른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다.16세기에 카톨릭 성당이 메스키타의 중심지에 지어져 카톨릭과 이슬람교의 두 가지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유대인 거리(La Juderia)

로마시대와 고딕 시대로 돌아가보면 유대인 거리는 항상 문화적이고 지적인 부분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거리는 코르도바의 가장 중요한 이들이라고 여겨지는 로마 철학자 세네카, 아라비아철학자 Averroes, 유대인 철학자 Maimonides의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아직까지도 또한 스페인에 남아 있는 몇몇 유대 교회중 하나가 있기도하다. 이 교회는 1315년에 세워진 것이다. 근처에 투우 박물관이 있으며 여름에는 플라멩코 공연을 볼 수도 있다. Gothic-Mudejar 스타일의산바돌로메 예배당, Casa del Indiano, 11세기 회교사원의 광탑등의 볼거리가 있고 Calle de Comedias에는 옛날 아라비아식 목욕탕이 있다.


론다 Ronda

말라가 주 북서부에 위치하며 주도 말라가에서 북서쪽으로 113km 떨어져 있다. 평균 고도는 723m이다. 말라가주 전체 도시 중에서 2번째로 면적이 넓다. 기원전 6세기경 켈트족이 최초로 이 지역에 아룬다(Arunda)라는 이름의 정착촌을 세웠고, 이후 고대 페니키아인이 제법 큰 규모의 마을을 세웠다. 그러나 현재 도시의 시초는 기원전 3세기에 로마 제국의 장군이자 정치가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가 건설한 요새화된 마을이다.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 황제로부터 시의 칭호를 얻었다.

특히 이 도시는 투우의 발상지로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785년에 건설한 에스파냐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중 하나인 론다 투우장(Plaza de Toros de Ronda)에서는 지금도 가끔씩 투우 경기가 열린다. 1793년에 건설한 대표적인 관광 명소 누에보 다리(Puente Nuevo)를 비롯해 많은 문화유산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누에보 다리 Puente Nuevo

말라가주 북서부 도시 론다의 엘타호(El Tajo) 협곡에 놓인 다리이다. 론다를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는 120m 깊이의 이 협곡을 연결하는 3개의다리 중 하나로, 마르틴 데 알데우엘라(Martín de Aldehuela)가 총책임자로 40여 년 동안 공사해 1793년에 완성했다. 3개 다리 중 가장 늦게 완공되어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까마득한 깊이의 협곡 밑바닥까지 닿은 거대한 다리는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루어 수십 년 동안 에스파냐의 모든 인공 구조물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사진 촬영의 대상이 되었으며, 현재도 전 세계의 사진작가들이 선호하는 장소이다.

론다 투우장 [Plaza de Toros de Ronda]

 

투우의 발상지로 알려진 도시 론다 서쪽 외곽에 있으며 에스파냐에서 가장오래된 투우장 가운데 하나이다. 마르틴 데 알데우엘라(Martín deAldehuela)가 1779년에 건설을 시작해 1785년 5월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완성했다. 지름 66m의 원형 투우장으로 최대 수용 인원은 약 6,000명이다. 관중석은 2층으로 이루어졌는데 1·2층 모두 관중석 앞쪽으로 우아한 모양의 원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고, 원기둥 사이사이는 거의 직선에 가까운 완만한 곡선형 아치로 연결되어 있다.


세비야 SEVILLA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5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비야(Sevilla)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내 세비야 주(州)의 주도로,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도시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강(Guadalquivir)의 상류 연안에 자리 잡은 이곳에는 오늘날 70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과거에 이 곳 세비야 항은 스페인과 아메리카 대륙 간 무역거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새롭게 생겨난 항구들에 의해 중요도가 과거보다 약화되긴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세비야는 이베리아 반도의 항구들 중 대표 격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의 세비야 대성당(Catedral)

'Magna Hispalensis'라고도 하는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고딕양식의 건축물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사원에이어 유럽에서 3번째로 큰 교회이다. Giralda로 알려진 The AlmohadeMinaret은 르네상스 부흥시기인 1568년에 만들어졌고 대성당은 1401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수세기에 거쳐 완공되었다. 고대 모스크의 유적지에 건축되었으며 5개의 본당 회중석과 25개의 예배당을 갖춘 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성당 내부에는 15세기의 스테인드 글라스, 정교한15세기의 성가대석, 교회 제단 위쪽에 있는 고딕양식의 장식벽와 같은 예술적인 건축물들로 가득 차 있다. 분리되어 있는 왕실 예배당에는 Murillo, Zurbaran, Valdes Leal, Goya 등의 작품들이 있으며 유리관 안에는 두개골이 전시되어 있어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세비야의 가장 큰 탑, Giralda

히랄다(Giralda)는 세비야의 가장 높은 건축물로 세비야 어디서나 볼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특징이라면 이태리 로마의 돌을 옮겨 기초를세우고 건축되었다. 이 탑 안에는 거대한 르네상스 스타일의 종이 있다. 꼭대기에 올라 도시를 바라보면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도시전경을볼 수 있다. 이 탑 내부에는 이 탑을 오르는 사람이 안전하도록 35개의 램프가 있다. 외관은 무어 식 구조로 건설하는데 만 약 20년이 걸렸고 벽돌을 격자무늬로 쌓아 올림으로써 더욱 견고함이 느껴진다. 또한 창문의 모양은 아치 형태로 만들어져 있으며 발코니의 추가는 다소 르네상스적이고 종탑은 16세기 중반에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

황금의 탑(Torre del Oro)

1221~1222년 사이에 지어진 황금의 탑은 세비야에 있는 Almohade시대의 마지막 작품중 하나이다. Alcazar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마지막방어벽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졌다. 이 탑의 이름은 한때 돔을 덮었던황금 타일로 햇빛이 반사된되서 연유되었다. 지금은 유명한 스페인 항해자와 선박의 모형과 그림등이 전시되어 있는 해군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라나다 GRANADA

에스파냐(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자치지방(autonomous community)의 그라나다주(州)의 주도(州都)이다. 스페인어로 눈덮힌 산맥이라는 의미를 가진 험준한 산악지역인 시에라 네바다(Sierra Navada) 산맥 북쪽에 위치한다. 과달키비르 강(江)의 지류인 베이로(Beiro) 강, 제닐(Genil) 강, 다로(Darro) 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며 해발 738m의 고지대에 위치하는 고대도시이다. 인구는 약 23만 7천명이 거주하며 스페인에서 13번째 크기를 가진 도시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문명을 몰아내기 위한 레콩키스타(reconquista :국토 회복 운동)가 전개되면서 이슬람 세력권의 도시들이 점차 점령되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으로 남아있던 그라나다는 왕족과 귀족들 간 내분이 심화되어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기독교 왕국인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이 결혼하면서 더욱 강력한 기독교 왕국으로 합병되었다. 마침내 1492년 그라나다는 아라곤 왕국에 의해 점령되면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마지막 남은 이슬람문명은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그라나다에는 이슬람 왕국의 요새와 궁전, 사원, 대학 등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다. 문화유적이 많아 스페인의 관광객 뿐 만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관광도시이다.

알함브라 궁전(La Alhambra)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왕국인 나사리 왕조의 보아브딜 왕은 스페인국민의 국토 회복 운동에 굴복하여 평화적으로 이 성을 카톨릭 왕에게 건네주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 때가 1492년 1월, 바로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이 있던 해이다. 이로써 스페인은 1238년부터 시작된 약 8세기 간의 이슬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근대 스페인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붉은 성"이라는 뜻의 알함브라 궁전(La Alhambra)의 성벽은 2km이고 길이가 740m, 넓이가 220㎡에 달하고 있다.

헤네랄리페 정원(El Generalife)

왕궁의 동쪽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헤네랄리페 정원은 입구로부터 사이프러스 나무에 둘러싸인 통로가 길게 뻗어있다. 그라나다 성주가 14세기 초에 여름 별장으로 만들어 둔 이 곳은 밝은햇빛에 반짝이는 분수와 맑은 물이 여행자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준다. 작은 운하 주위에서 뿜어내는 크고 작은 분수와 흐르는 물이 한결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정원 안에서도 특히 아세키아 뜰이 돋보이는데,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꽃들이 번갈아 핀다.

아랍지구 (Albaicin)

그라나다 도시 한켠, 알함브라 궁전과 마주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알바이신 지구(The Albaicín)는 그라나다의 무어리쉬(Moorish)기원과 매우 밀접한 곳이다. 이곳의 성채는 13세기에 처음 지어졌으며 30개 이상의 회교사원이 있다. 도시의 교회의 대부분은 이곳에만들어 졌으며, 자갈이 깔려진 작은 골목들에는 까르맨을 연상시키는 집시들이 서 있다. 무리쉬 장식과 정원, 바깥 세상으로부터 은둔시키는 높은 벽들은 이곳의 특징이다. 해질 무렵이면 산 니콜라스 교회의 전망대(Mirador de San Nicolas)로 나가  멀리 알함브라 궁전을 바라보면 석양에 물드는 지붕의 모습이 신비로워 보인다.


바르셀로나 Barcelona

스페인 제2의 도시인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와 천재건축가 가우디를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이베리아 반도의 북동부 지중해의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으로 온난한 기후 이다.

도시인구는 약 200만명으로 국민 총생산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스페인 최대의 상공업 도시이다. 약 10㎞에 걸쳐 아빙구다 데라 디아고날 거리가 바르셀로나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딕지구라 불리우는 구시가지와 현대의 빌딩이 들어차 있는 신시가지로 구분되어 진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타 도시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곳으로 세련된 문화도시이며, 주요 관광 도시이다.

가우디의 성가족 교회 (Sagrada familia)

가난한 신자들의 민간단체인 '산 호세 협회'에 의해 1882년에 건설되기시작했으며, 1891년부터 안토니오 가우디가 건축에 참가하였다. 가우디사후인 현재에도 계속적으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미완의 교회이다.현재 완성된 부분은 착공을 시작한지 100년만인 1982년에 완성된 것으 로 지하예배당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한 안쪽의 107m 높이의 쌍탑과 양측의 98.4m 높이의 탑이다. 앞으로 건설될 부분은 170m 높이의중앙탑과 그뒤의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140m의 탑이다. 따라서 가우디의 성가족 교회의 완성은 앞으로 100-200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는 4개의 탑과 그리스도의 강탄을 그린 살아있는듯한 조각들이 이색적이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150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298년에 착공한 후 1448년에 완공되었다.대사원의 폭은 40m, 길이는 93m, 첨탑의 높이가 70m이며 3개의 출입문을 가지고 있다. 정면의 현관은 1408년의 설계도에 의해 500여년만인1913년에 완성되었다.본당 안의 합창단을 둘러싸고 있는 흰대리석 조각은 바르셀로나의 소호성자인 산타에우랄리아의 생애를 조각한 것이며, 회랑 주위에 있는 방인Sala Capitular 는 부속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구엘공원 (Parc Guell)

영국의 전원도시를 동경했던 구엘의 투자로 가우디에 의해 만들어진 공원으로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언덕위에 세워져 있다. 착공 초기에는 미래의 이상적인 전원도시로 설계 되었지만 건설도중 자금난으로 당초 60호를 건설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30호밖에 짓지 못했으며 1922년부터 공원으로 조성되어 바르셀로나 시에서 관리하고 있다.가우디의 건축 이상이 숨쉬고 있는 곳으로 여러 가지 색깔이 선명한 타일로 장식된 외관은 마치 동화 속의 집처럼 느껴진다.

람블라스 거리 (Las Ramblas)

북쪽의 카탈루냐 광장에서 남쪽 항구와 가까운 파우 광장까지 약 1㎞에달하는 거리를 말한다. 원래는 작은 시내가 흘렀으나 19C경에 현재와같은 산책로가 있는 대로로 바뀌었다. 거리 주변에는 꽃집, 애완동물가게, 액서세리 가게 등이 있다.샘물을 마시면 바르셀로나에 매료되어 이곳에서 살게 된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카날레탄스라는 샘물과 장식 미술관, 1877년에 개관한 신고전주의 건물로 바르셀로나 최고의 오페라 하우스인 리세오 극장이 있다.산책로는 미로가 디자인한 모자이크가 바닥에 깔려 있고 멋진 카페들도많아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몬세라트 Monserrate

화석이 된 스테고사우루스처럼 생긴 문타냐 드 몬세라트는 연한 색의 역암질 기둥으로, 하늘을 찌를 듯 서서 바르셀로나 뒤로 펼쳐진 평원을 압도하듯 굽어보고 있다.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은 2,000개가 넘는 등산로를 찾는 등산객도 많지만 '라모레네타'라고 하는 검은 마돈나를 보기 위한 순례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작은 목각상은 성 누가가 만든 것으로 서기 50년에 성 베드로가 이곳에 가져왔다고 한다. 물론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이 조각상이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임이 밝혀졌다. 이 조각상과 관련한 또 다른 종교적인 일화가 있다.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그의 칼을 이곳에 내렸을 때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예수회를 창건했다고 전해져 온다.

몬세라트 수도원(t Montserrat Monastery )

880년, 한 무리의 목동 아이들이 몬세라트 산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것을 목격했다―천사들이 노래하고 아이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천사들의 방문은 한 달 동안 계속되었으며, 산속의 동굴로 이어졌다.마을 사제들은 이곳을 둘러보다가 동정녀 마리아의 이미지를 발견하였다. 훗날 11세기에 올리바 수도원장이 이곳에 작은 수도원을 세웠고, 오늘날에도 80명의 베네딕토회 수사들이 이 바위투성이 산을 찾는 순례자들을 환영하고 있다.


코스타델솔해안 [Costa del Sol]

‘태양의 해안’이라는 뜻. 지브롤터에서 말라가, 그라나다의 각 주(州)를 지나 알메리아에 이른다. 기후가 온화하고 맑은 날이 많은 지중해성 기후로 1년 내내 해수욕이 가능하여 피한 ·피서객이 많이 찾는다. 특히 햇빛을 보기 어려운 북유럽인들의 동경의 땅이기도 하다. 중심도시 말라가 외에 모트릴 ·알메리아 등 관광도시와 해수욕장이 늘어서 있다.

말라가 [Malaga]

항구 도시이며 지중해에 속한 말라가만(灣)에 면한다. 페니키아·그리스 이래의 오랜 도시이며, 당시의 성채는 로마의 수복(修復)과 이슬람의 지배를 거쳐 남아 있다. 이 성채와 성벽으로 연락되어 있는 지브롤파로는 14세기에 건설된 지성(支城)에 해당하며, 전망이 아름답다. 화가 피카소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미하스

말라가주 남부 해안에 위치하며 주도 말라가에서 남서쪽으로 31km 떨어져 있다. 평균 고도는 428m이다. 안달루시아 지방 고유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로, 흰색 벽과 갈색 또는 붉은색 기와 지붕이 특징인 안달루시아 전통 양식의 주택이 산 기슭부터 중턱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세계적인 해변 휴양지 코스타델솔(Costa del Sol)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관광·휴양 도시로 잘 알려져 있으며, '코스타델솔의 보석'이라는 애칭도 있다.


살라망카 [Salamanca]

마드리드 북서쪽 180km에 있는 바야돌리드 남동쪽 70km 지점에 위치하며, 도루강(江) 지류인 토르메스강 우안에 있다. 한니발의 점령 이래, 로마의 군사도시였으나, 고트와 이슬람의 지배를 거쳐 1085년 그리스도교도의 지배로 되돌아갔다. 13세기에 알폰소 대주교에 의해서 살라망카대학이 창립된 이래 학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했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을 비롯, 16세기에 건립된 고딕 양식의 대성당과 로마 시대의 다리와 극장 등 수많은 명승고적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18세기에 만들어진 플라자마요르는 에스파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힌다.

살라망카 대학교

살라망카 주 중앙부에 위치한 주도 살라망카의 파티오데에스쿠엘라스 거리(Calle de Patio de Escuelas)에 있다. 중세시대인 1218년에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9세(Alfonso IX)의 칙령으로 설립했으며 에스파냐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교 중 하나로 손꼽힌다. 1225년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교(Universidad) 자격을 취득했다. 오늘날 에스파냐에서 최상위권 대학교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포르투칼
(PORTUGAL)

◈수도 : 리스본(Lisbon, 약 200만명)

◈인구 : 약 천 70만명

◈면적 : 92,131km2 (한반도의 약 2/5)

◈주요도시 : 뽀르또(Porto), 꼬임브라(Coimbra)

◈주요민족 : 이베리아족, 켈트족, 게르만족 및 무어족 등의 혼혈 민족

◈주요언어 : 포르투갈어(Portuguese)

◈종교 : 카톨릭

◈ 통화 : 1유로(EURO)=1,350 원 (2021. 11 기준)

[지 리]

지형적으로 동쪽은 스페인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대서양과 접한 남북으로 긴 나라이다. 총면적은 92,390 Km2로 남한과 비슷한 크기이다. 북에서 남으로 560km, 동에서 서로는 220km로 유럽 국가들 중에서 매우 작은 편에 속한다.

북부와 중부 지방은 인구 밀도가 높으며 산악지대로 강, 계곡, 숲, 산이 많다. 가장 높은 산맥은 토레(Torre)의 꼭대기인 세라 다 에스트렐라 (Serra da Estrela, 1993m)이다. 그에 비해 남부는 북부에 비해 인구 밀도가 낮으며 올리브, 코르크 등이 많이 나는 평지로 되어 있다.

숲이 우거진 북부에는 많은 포도재배지역이 있고 옥수수, 감자, 호밀 등이 재배된다. 남부 지방에는 숲은 적지만 올리브, 포도재배지, 오렌지와 무화과 나무가 풍부하고 봄에는 아몬드가 만발한다.

[사회 문화]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지만 관광지나 호텔 또는 레스토랑에서는 영어와 불어도 통하는 편이다.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는 형제어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스페인어도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포루투갈 인은 카톨릭을 믿고 있다. 포르투갈에는 전통 있고 웅장한 성당들이 많으며 아직도 강한 카톨릭적 전통이 남아 있어서 많은 지역사회의 활동은 다양한 종교적 행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종교적인 큰 축제일은 휴일로 정해져 있다.

가장 중요한 축제인 카니발과 부활절 기간 동안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것 또한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성수기는 6월 중순부터 9월까지이다.

켈트족, 이베리아족, 게르만족 및 무어족등 여러 민족이 있다. 국민성격은 온순, 소박, 단순, 자기 분수를 잘 지킨다. 범죄율은 낮으며 치안상태도 양호하다.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며 책임감이 높지 않다. 공중도덕을 잘 지키지 않고 업무처리 및 행정처리 지연사례가 빈발하다. 운전자들의 난폭운전으로 사고율이 높다. 축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남녀차별이 심하지 않고, 가정생활을 중시하며 자녀는 많이 두지 않고 나이든 부모를 모시고 사는 풍속이 있다.

[기 후]

대서양에서 부는 바람의 영향으로 해안 지방의 기후는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에 서늘한 온난한 기후를 보인다. 본토의 중앙을 흐르는 테주 강을 경계로 북부의 산악지방은 강우량이 많고 습도도 높은데 비해 남부 대서양 쪽은 화창하고 건조하여 지내기 좋다. 유럽에서 가장 햇볕을 많이 쬘 수 있는 나라로 손꼽힌다.

일반적으로 4월부터 10월까지는 따뜻하다. 보통 눈은 산악지역에 내린다. 스키시즌은 1월부터 3월까지 이어지는데 그 중 2월이 가장 적당하다.

 

리스본 [Lisbon]

 

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Lisboa)라고 한다. 테주강(타호강)의 삼각 하구 우안(右岸)에 위치한다.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며, 유럽대륙 대서양 연안 굴지의 양항(良港)이기도 하다. 일찍이 페니키아·그리스·카르타고 시대부터 항구도시로서 알려져 왔으며, BC 205년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714년 이래 다시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리사보나로 불리다가, 1147년 알폰소 1세에 의해 해방되었다. 1255년 코임브라로부터 천도한 뒤 수도로서 현재까지 이르렀으며, 15∼16세기 해외진출시대에는 유럽 유수의 상공업 도시가 되었다. 1755년의 지진과 그에 따른 화재·해일로 시가지의 2/3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적인 건조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동부의 알파마 지구에는 성(聖)조지성(城)이, 서부의 벨렝 지구에는 본래 성채였던 벨렝의 탑, 바스쿠 다 가마를 기념한 고딕양식의 수도원 및 아주다 궁전(현재의 외무성)·박물관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남아 있고, 1290년에 창립된 대학이 있다. 시가지는 3개 부분으로 나뉜다.

제로니모스 수도원 [Monastery of Hieronymites]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마누엘 1세가 선조인 항해왕 엔히크를 기리기 위하여 착공하여 1551년 완공하였다. 석회암으로 된 건물은 1변의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며 웅장하고 화려한 노르만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수도원의 산타마리아성당 파사드 가운데에는 마누엘 1세와 왕비 마리아, 성제로니무스, 세례 요한 등의 조각상이 있고, 남문 회랑에는 후기 고딕 마누엘 양식을 대표하는 성인과 고승들의 조각상 24개가 세워져 있다. 수도원 왕실묘지에는 마누엘 1세와 왕비의 돌널, 바스쿠 다 가마와 루이스 드 카몽이스 등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타호강 근처에 있는 벨렘탑은 4층의 등대로서, 1515∼1521년 프란시스코 데 알다가 가마의 업적을 추모하여 건물 모퉁이마다 감시탑을 세우는 형식으로 지었다. 포르투갈 특유의 마누엘 양식을 띠고 있으며 밧줄·조개·바다풀 등의 장식을 새겨넣고 총안을 둔 흉벽 등을 설치하였다. 탑의 안뜰에는 '성공의 성모' 조각상과 인도 양식의 작은 첨탑을 설치하였다. 지하감옥 위에 있는 '총독의 방'은 고딕 양식으로 꾸몄고, '찬란한 방'이라는 거실도 만들었다. 1983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벨렘탑(Torre de Belem )

 

에펠탑이 파리를 상징하듯 벨렘탑은 리스본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는 이 탑은 당초 물 속에 세워졌으나, 테주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물에 잠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1515~1521년에 건설되었으며 나비가 물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누엘 양식의 3층 탑이다. 아름다운 테라스가 있는 3층은 옛날 왕족의 거실로 이용되었으며, 지금은 16~17세기의 가구가 전시되어 있다. 2층은 포대로 항해의 안전을 수호하는 '벨렘의 마리아 상'이 서 있다. 1층은 스페인이 지배하던 시대부터 19세기 초까지 정치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스페인 지배에 저항하던 독립운동가, 나폴레옹 군에 반항하던 애국자, 진보주의자들이 만조 때에는 물이 들어오고 간조 때에는 물이 빠지는 이 감옥에서 고통스러운 옥살이를 했다. 대항해시대에는 리스본 항구를 떠나는 모험가들을 전송하고 오랜 항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모험가들을 가장 먼저 반갑게 맞이하는 탑으로, 항해가들에게는 정다운 존재였다고 한다.

까보다로까 (Cabo da Roca)
유럽 대륙의 최서단에 위차한 항구마을로 하얀 등대가 대서양을 내려다 보고있다.

대륙은 이곳에서 시작되고 바다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루이스 뜨 까몽이스’가 한 말이 저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대서양의 파도가 끝없이 절벽으로 밀려오는 모습은 그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초원과 빨간 등대는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하게 한다.

 

 모로코 MOROCO


◈ 국가명 : 모로코 (Morocco : 영어), 마록 (Maroc : 불어), 알 마그립 (Al-Maghreb : 아랍어)
◈ 수도 : 라바트(Rabat, 160만명)

◈ 인구 : 약 2,750만명

◈ 면적 : 710,850㎢(한반도의 3.3배)

◈ 주요도시 : 카사블랑카(Casablanca), 라바트 (Rabat),페스(Fes), 탕헤르 (Tanger)

◈ 주요민족 : 아랍인(65%), 베르베르인(35%), 소수흑인,유대인

◈ 주요언어 : 아랍어(공용어), 베르베르어 및 불어 통용

◈ 화폐 : 디람 (Dirham) ( 1 EURO = 약 10 Dirham )

[역 사]

BC 3000년경부터 베르베르인이 남부의 아틀라스 산맥지대에서 살기 시작, BC 12세기경부터는 페니키아인이 해안지대에 무역기지를 건설하여 활약했고, BC 5세기에는 카르타고인이 와서 득세했다. BC 146년 카르타고가 멸망한 후에는 로마인이 북부지방에서 페스, 라바트까지 남하했다. 이슬람 세력은 7세기부터 들어왔는데, 그들은 베르베르 원주민을 이슬람화하고, 베르베르의 전사들까지 동원하여 이베리아반도 남부를 정복하였으며, 프랑스의 푸아티에까지 군사를 진출시켜 한때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를 크게 위협했다. 그리고 바그다드에서 온 이드리스 1세에 의해 독립왕조 (788 - 985)를 수립했다. 알모라비드 왕조(1056 -1147) 를 거쳐 알모하드 왕조(1148 - 1269) 때 이베리아 반도를 잃고, 일단 쇠퇴기에 접어들어 다시 몇몇 왕조의 흥망성쇠를 거친뒤, 19세기 전반부터는 스페인,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지 리]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의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북쪽으로 지중해, 서쪽으로는 대서양에 닿아 있다. 동쪽에서 남동쪽으로는 알제리와 닿아 있고, 남쪽은 사하라 사막에 이어져 있다. 면적 71만 2000Km2 (서부 사하라 포함) 의 국토는 4개 지역으로 나눈다. 먼저 표고 2700m 의 리프 산맥이 있는 북부 연안 평야, 리프 산맥과 3개 아틀라스 산맥이 사이에 있는 중부의 비옥한 고원 분지 지대, 그리고 아틀라스 산맥 너머 남동쪽에서 남쪽의 사하라 사막으로 뻗은 반 건조지대, 끝으로 서부의 대서양 연안이다.

[기 후]

기후는 내륙부가 대륙성, 리프 산맥이 있는 북부가 지중해성, 대아틀라스 이남은 사막기후이다. 강우량은 북부에서 남부로 갈수록 줄어든다. 연간 평균 강수량 400 - 600 mm .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편에 든다. 그리고 연안 지역은 따뜻하여 1년내내 지내기 쉽다. 하지만 내륙부는 일교차, 연교차가 심하여, 표고 400m 의 페스에서는 연중 최고기온 44도, 최저 기온 1도 이다. 야간에는 스웨터나 잠바가 필요하다.

[사회, 문화]

일반적으로 이슬람문화의 안에서 길들여진 풍속 관습에 지배받고 있어 남녀차별이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다. 모로코는 이슬람문화 안에서도 온건하기 때문에 대도시 안에서는 보통 큰 특징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전통복장을 하고 있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평소에는 작은 마을에서도 찾기 힘들다. 모로코 서민의 오락이라고 한다면 영화나 축구 관람 이외에 춤이 있다. 영화는 일반국민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오락물인데 대부분이 미국 영화, 프랑스 영화, 이탈리아 영화 등이고, 아랍 영화의 대부분은 이집트 영화로 프랑스어로 더빙되어 나온다. 모로코는 춤을 직업으로 삼는 예인집단이 오래 전부터 성립되어 전국을 돌면서 춤과 노래를 팔아 왔으며 현재는 관광객을 상대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카사블랑카 CASABLANCA


수도 라바트 남쪽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모로코 최대의 도시. '카사블랑카'는 15세기에 이 도시를 건설한 포르투갈인이 붙인 이름으로 '하얀 집'이라는 뜻 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서구풍으로 크게 개조되어 고층 건물들이 많아지고, 거리는 차와 사람들로 번잡하다. 그러나 해안으로 나가면 호텔들이 즐비하고 해변에서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상업도시이면서도 휴양지라는 양면성이 카사블랑카의 특징이다. 평균기온이 겨울 15℃, 여름 24℃의 쾌적한 기후이다. 모로코 하늘의 관문이라 할모하메드 5세 공항에서 국제선과 국내선이 발착하고 있다.

핫산 2세 회교 사원 (Mosquee Hassan Ⅱ)이 사원은 1992년에 준공되었으며 아랍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 사원 다음으로 큰 회교 사원이다. 지상 200미터의 탑은 아랍 전통 양식과현대 최신 자재와 설계로 이루어진 최첨단 건축물이다. 전국 각지의 각분야 장인 1만명이 총 동원되어 8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실내는 균형잡힌 장방형이며 78개의 줄무늬 대리석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모하메드 5세 광장 (Place Mohamede Ⅴ)
카사블랑카의 중심에 있고, 반원형 돔이 길잡이가 된다.

여기서부터 여러 도로가 시작되고, 주변에는 고급 호텔과 대형 토산물 상점이 즐비하다.

시내 관광이나 쇼핑의 기점이 되는 광장이다.

카사블랑카 항구
모하메드 5세 광장에서 모하메드 알한 살리 거리를 바다쪽으로 15분 정도 걸으면 대형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카사블랑카 항구에 이른다.아프리카 최대의 항구로서 여객선, 화물선 등이 드나든다.

대서양에서 잡힌 신선한 생선이 즐비한 어시장도 있다.



페스 Fes

 

라바트에서 동쪽으로 약 200km, 인구 약 60만, 중부 모로코의 중심이 페스이다. 809년 이드리스 2세에 의해 이드리스 왕조의 도읍으로 정해졌던 고도(古都)이고 지금은 모로코 제4의 대도시이다. 왕조의 변천에 따라 도읍이 다른 곳으로 바뀌어도 페스는 발전을 계속하여 메린 왕조 시대에 가장 번창했다. 그후로도 모로코의 신앙, 문화, 예술을 선도하고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지적(知的)인 왕도(王都)로서 알려져 있다. 세계 최대의 미로(迷路)라고 이야기되는 이곳의 메디나에서는 중세의 세계가 지금도 활기를 잃지 않고 있다.


천연 가죽 염색공장 (Tanneries)
페스 엘 발리 중앙에 위치한 이 곳에서 일년 내내 주로 양가죽에 천연 염료를 사용해 야외에서 염색작업을 한다. 인부가 구덩이에 직접 들어가서발로 작업하는 광경이 매우 이색적이다.

부 줄루드 문

페스 알발리의 서쪽 입구에 있는데 페스 알발리의 얼굴이라고 할 문이다.1913년에 세워졌는데 바깥쪽은 페스를 상징하는 청색타일로 안쪽은 이슬람을 상징하는 녹색 타일로 아라베스크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탕헤르 Tanger


지중해 관문으로서 모로코 왕국의 최북단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다. 대서양와 지중해가 만나는 곳이며 유럽 대륙과 직선거리 약 12km인 탄제는 지리적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이미 기원전 12세기부터 카르타고 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그 후 로마인들이 그들의 지중해 상업 중심지고 이용했다. 8세기 때에 아랍인들이 이곳을 장악했으며 14세기와 17세기에 각각 포르투갈과 영국에 의해 점령되기도 한 기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라바트 Rabat

대서양 연안에 자리 잡은 모로코 왕국의 수도. 인구 약 100만, 정치의 중심지로서 국왕이 거처하는 왕궁, 의회, 정부 기관, 외국공관 등의 공공건물이 많고, 녹음이 짙은 거리들을 차분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외국과의 교류가 많은 탓인지, 행인들의 상당수가 유행을 따른 차림새이고, 특히 양장 차림의 여성이 많다.

카르타고 로마 시대 이래의 유적도 많고, 카사블랑카의 모하메드 5세 공항에서 차로 1시간 30분밖에 소요되지 않나 이곳으로 곧장 오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모하메드 5세 묘 ( Musolee Mohammed V )
모하메드 5세 전 국왕의 묘. 1912년 이래 술탄 벤 슈세프는 프랑스의식민 통치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의 선두에서 싸우고, 1956년 3월 독립을 성취하자, 왕위에 올라 모하메드 5세가 되었다.

그후 근대국가 건설에 힘쓰다가 1961년에 죽었는데, 이 묘는 1971년에 준공되었다. 묘 속에 석관이 안치되어 있으며, 실내 장식이 매우 훌륭하다.

핫산 탑 ( Tour Hassan )
알모하드 왕조의 제 3대 야콥 알만수르가 12세기말 경 장대한 모스크의 건설을 시도했으나, 얼마 후 그가 죽으면서 공사는 중단되었다.이탑은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 환상의 모스크 첨탑이다.

탑 남쪽에는 300개 이상의 돌기둥이 남아 있다. 완성 되었더라면 아마 아프리카 최대의 모스크가 되었을 것이다. 스페인 무어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