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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스위스, 이태리

독일 스위스 이태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9-29 11:10
조회
622

                                                                                                   독일 GERMANY

․수도 : 베를린(Berlin, 약 350만명)
․인구 : 약 8천 241만명

․면적 : 356,885km2 (한반도의 1.6배)

․주요도시 : 프랑크푸르트(Frankfurt), 함부르크(Hamburg), 뮌헨(Muenchen),

․주요민족 : 게르만족(99%)

․주요언어 : 독일어

․종교 : 신교(36.4%), 구교(34.6%), 기타(29%)

․통화 : 1유로 (EURO)=1,390원 (2021.11)


장난감처럼 예쁜 도시와 아름다운 호수, 변화 있는 산악 지대를 볼 수 있는 독일은 9C 중엽에 분열된 프랑크 왕국 중 동 프랑크 왕국에서 비롯된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1제국인 독일 연방국이 형성되었다가 수많은 국가로 나뉘었으며, 1871년 철혈제상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 제 2제국이 탄생하였다.
1933년에는 제 3국인 히틀러 나치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으나 1945년 패전 후 동서로 양분되었다. 1972년에 이르러 동, 서독이 UN에 동시 가입하였으며, 1990년 10월3일 동서 화해의 기류를 타고 역사적인 재통일을 이루었다.통일 이후 약간의 경제적 혼란을 겪었으나 주요산업인 자동차, 화학산업을 기반으로 건실한 경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지 리]

남북으로 876㎞ 동서로 640㎞에 걸쳐 있다. 지역적으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 3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지며 전체 면적은 357,000㎢(한반도의 1.5배)이다. 북부지역은 북해와 발트해에 접하고 있는 저지대이며, 중부지역은 고도의 산악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해발 1,000m 정도의 고원으로 삼림이 풍부한 구릉지대로 유명한 흑림등의 대규모 산림 군이 펼쳐지는 지역이다.

남부지역 또한 높은 산악지대로 알프스 기슭을 따라서 펼쳐진 고원지대로 보덴 호 등 수려한 경관의 호수들이 산재해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전체 지형은 남쪽의 알프스에서 북쪽의 북해로 경사져 있기 때문에 라이강 등 주요 하천이 북쪽으로 흐르는 특징을 보여준다.

[기 후]


북서부지역은 해양성기후, 남동부는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전반적으로 겨울은 한랭하며, 여름은 온화하나 변덕스러운 날씨를 보인다. 봄이 대체로 늦게 오므로 여름이 짧은 편이다. 12월부터 3월까지의 겨울은 라인강이 얼 정도로 추위가 혹독하다. 청명한 날씨는 해안지역은 4-5월, 내륙지역은 6-9월에 볼 수 있다.6월까지는 샤프트케르테라 불리우는 추운 날이 종종 급습하며, 연중 갑자기 비오는 날이 많다. 여름에는 가장 더운 달의 기온이 북부의 경우 17-18℃, 남부는 25℃로 서늘한 편이다.여름철에는 간단한 스웨터를, 봄, 가을에는 따뜻한 자켓을, 그리고 겨울철에는 두꺼운 코트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사회문화]

독일어가 공용어이나 영어도 통용된다. 그러나 지방의 소도시에서는 영어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으므로 간단한 회화 정도는 암기해 도는 것이 좋다.

인구는 약 8,180만 명으로 대부분이 게르만 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외국인이 7백 만명 정도 된다. 수세기 동안 문학적으로 풍부한 생활권으로 서양 세계 문화의 본질을 결정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계적 문학가를 배출하였다.그 중에서도 괴테와 실러,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 등의 작가와 하이네, 릴케 등의 시인이 널리 알려져 있다.또한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함께 전세계 클래식 음악가의 태반을 배출시킨 음악의 나라로, 바흐와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만, 바그너, 베토벤 등 세계 거장의 음악가가 모두 독일에서 나왔다.

드라마작가인 브레히트와 패션 디자이너인 요프, 독일의 전설인 니벨룬겐과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시험적으로 자연환경을 개척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건축물, 기념물, 언어, 음악, 시각적인 예술분야가 계속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현재에도 연예와 패션의 영역등 최신의 창조물에도 그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시 차]

우리 나라보다 8시간이 늦고 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9월 마지막 일요일까지의 서머타임 실시 기간에는 7시간 늦다. 섬머타임 실시하지 않을 때 기준으로 서울이 정오이면 독일이 새벽 4시 이다.

                                                                                           프랑크푸르트 Frankfrut


'뱅크푸르트(Bankfurt)'라고 불리우는 프랑크푸르트는 금융과 상업의 도시로 독일 최대공항이 있고 현대적인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이다. 8세기 샤를마뉴 황제에 의해 많은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하여, 12세기에 들어서 유럽 각국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견본 시장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독일 역사를 짊어진 역사적 관광지로 프랑크푸르트의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올렸으며, 파울스 교회에서는 독일 제 1회 국민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등의 작품을 남긴 세계적인 문호 괴테의 생가가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52명의 실물크기 초상화가 벽에 장식되어 있는 구 시청 건물 뢰머(Romer)와 오페라하우스가 인상적이다. 매년 많은 세미나와 국제회의가 개최되는 등 독일 최대의 회의 센터이기도한 프랑크푸르트는 유명한 Book Fair가 열린다.

우리 나라와도 관련이 깊은 도시로 외환은행 등 6개의 금융기관, 대한항공, 여러 종합상사와 건설회사들의 지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교포상사들이 상업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 프랑크푸르트 평균 기온

월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기온(°C)

1

2

6

8

13

16

18

18

15

10

5

2



괴테 생가 (Goethehaus)
프랑크푸르트 시민의 위대한 아들'이라는 호칭을 받았던 대문호 괴테가 태어나 살던 집이다. 전쟁 후에 재건된 것으로 괴테가 태어난 방은 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집필하던 방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자유형의 계단, 정원의 아름다운 전경을 갖춘 밝고 즐거운 넓은 집으로 괴테는 이 집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갖게된 오스트리아에 대한 동경과 사랑, 가족들간의 애정을 엿 볼 수 있다. 괴테 박물관에는 괴테의 생에에 관한 서류와 작품들, 유명한 예술가들의 조각과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
뢰머(구 시청사) 광장 (Roemerplatz)
뢰머는 프랑크푸르트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2차 대전이후 손상된 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도시의 생성과 동시에 지어진 뢰머의 2층에는 신성 로마제국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베풀던 방, 카이저자르가 있다. 유럽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뢰머 광장 앞 정의의 여신 분수 또한 유명한 관광거리이다.
로렐라이 언덕(Loreley)
장크트 고아르하우젠(St. Goarhousen)이라는 도시 위쪽으로 라인강의 오른쪽 절벽에 위치한 로렐라이 언덕은 133m로 수면위로 깎아세운 듯하다. 유럽의 3대 썰렁 명소중 하나에 꼽힐만큼 직접 가서 보면 절벽밖에 없어 실망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경관이 매우 아름다우니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본다면 아름다운 경치에 푹 빠질것이다. 로렐라이 음악을 들으며 감상하면 더 운치있을 듯하다. 로렐라이 언덕을 볼려면 유람선을 타고 관광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기차안에서 보는 경관 또한 멋지다.
작센하우젠(Sachsenhausen)
18세기의 정경을 떠올리게 하는 구시가지로 마인강 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사과주,아펠바인(Apfelwein)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다. 도처의 주점에서 작센하우젠 특유의 와인과 독일 각지의 독특한 맥주를 맛볼 수 있다.


                                                                                                  하이델베르그 HEIDELBERG


쇠나우 수도원을 세우면서 보름스 성곽을 발판으로 조그만 촌락인 하이델베르그로 발전하게 되었다. 1196년 처음으로 쇠나우 수도원의 문서에 하이델베르그라는 말이 나타났다. 1386년 제국의 7대 선제후 중의 하나였던 궁중백 루프레히트 1세가 하이델베르그 대학을 설립하기 시작하면서 하이델베르크는 젊음의 도시 대학가가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을 면할 수 있어서 아름다운 고성들을 고스라니 보전하고 있다. 따라서 하이델베르그를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낭만적인 독일의 숨결과 청춘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인구는 약 13만 명 정도이며 이중 27,000명 이상이 대학생이다. 젊은 도시 하이델베르그는 밤마다 학사주점에는 청춘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으며, 반투명한 하늘과 숲의 조화가 특히 매력적인 도시이다.

하이델베르그 고성 (Schloss Heidelberg)
하이델베르그 성의 정원은 항상 개방되어 있다. 봉건시대 말기에 건축된 약제사의 탑, 시계탑, 게스프렝터 탑과 고딕, 르네상스 과도기에 건축된 도서관, 여성건물,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된 거울의 방이 있는 건물, 오토하인리히 건물 등이 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과도기에 건축된 프레드리히의 건물, 영국건물이 있다. 하이델베르그 성의 내부 관람은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며, 거대한 술통과 독일제약 박물관 등도 볼 만하다.
철학자의 산책로 (Philosophenweg)
하이델베르그의 산책길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노이엔하임 교외에 있는 베르크 거리에서 출발하여 기슭으로 올라가는 거리이다. 도보로 약 1시간 가량이 소요되며, 정상에서는 시내와 하이델베르그 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남쪽을 보면, 강 건너 장엄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헤겔, 야스퍼스, 괴테 등 많은 철학자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철학적인 사색에 잠겼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Ruprecht Karl Universitaet)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깊은 대학으로 루프레히트 1세에 의해 1386년에 설립되었다. 바덴의 카알 프리드리히 대공이 집정하던 1803년에 최초의 국립대학으로 결정되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수많은 석학들의 열띤 토론장이 되었다. 근래에도 노벨상의 각 분야에서 계속 수상자를 배출하는 학문적인 공헌이 지대하다. 설립자 이름을 따서 루프레히트 카를 대학이라고도 한다. 220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 도서관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가장 큰 도서관이다.
옛다리(Alte Bruecke)라 불리는칼 테오도르 다리(Kari Thedor Brucke)


네케르 강에 놓여 있는 다리.

철학자의 산책로로 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 하며, 이 다리의 본래 이름은 카를 테오도어 다리인데 보통 옛 다리라고 부르고 있다. 다리 위에는 이 다리를 만든 테오도어 상과 아테네 여신상이 있으며 입구 양쪽에 하이델베르크 멍키 동상이 있다.
중앙거리(Hauptstrasse)


도시 중심의 마르크트광장에서 비스마르크광장까지 이어진 거리이다. 리멘슈나이더의 작품 '12사도제단' 등이 있는 선제후 박물관과 그 옛날 학생들이 근신하기 위해서 들어갔다는 학생감옥,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문을 교류하는 대학광장 등이 있다. 왕자와 마을 처녀의 사랑을 그린 희곡 <알트 하이델베르크>의 무대인 학생술집도 자리하고 있다.


                                                                                                                      본 Bonne

본은 라인 강 강변에 있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대학 도시, 작고 아담한 소도시로 보이지만 독일연방공화국의 수도이다. 베토벤이 태어난 도시로도 유명한 본은 바로크 시대의 현란함이 남아있는 궁전과 호페르스도르프 성, 시민들이 이것들을 흉내내어 지은 시청사등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다음과 같은 베토벤의 한마디 말로 표현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이 세상의 빛을 보았던 아름다운 곳이. 지금도 더욱 아름답고 확실하게 눈 앞에 떠오른다.”

슈만의 집 Schumannhaus
베토벤은 본에서 태어났지만 슈만은 본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집은 슈만이 죽은 후에는 병원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음악관계 도서관으로, 일부는 슈만의 기념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베토벤 하우스 (Beethoven Haus)


중앙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시청사 북쪽에 해당하는 본가세 Bonngasse 20번지에 있다. 베토벤은 이곳에서 태어나서 20세까지 살았다. 현재 내부는 기념관으로 유품과 자료․초상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마르크스와 하이네, 역사가 랑케를 배출해낸 본 대학
(Friedrich Wilhelms Universitaet)

마르크트 광장의 서남쪽. 옛날에는 쾰른 선제후의 궁전이었지만 현재는 대학의 중심 교사(校舍)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크 양식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으며 대학 도시로서의 본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쾰른 Koln


쾰른은 라틴어의 콜로니아(식민지라는 의미)에서 유래한다. 한때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미디어의 본거지로서 국제적 수준의 다양한 박람회를 개최하는 국제산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쾰른의 상징적 존재인 쾰른대성당은 고딕양식의 통일된 완전체로 남아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998년에는 이 대성당이 착공된지 75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로, 이를 위해 도시곳곳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펼쳐지기도 했다. 쾰른에는 쾰른 대성당 이외에도 주목을 받는 관광명소가 여러 개 있으며, 라인 강변을 거닐어 볼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쾰른대성당 (Dom)


높이 157m의 건물로 안 길이도 144m, 폭은 86m나 된다. 1248년에 착공해서 1880년에 완성한 고딕 양식으로 건축한 카톨릭 사원으로 외관도 훌륭하지만 내부의 제단화(祭壇畵)와 스테인드 클라스 등 볼 만한 것이 많다.
로마 게르만 박물관 (Roemisch-Germanisches Museum)


쾰른이 참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라는 것은 이 박물관에 가면 분명해 진다. 기원 2세기 경에 만들어진 <디오니소소 모자이크>라고 하는 로마 시대의 주거의 일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이 장소에서 발굴되어 박물관의 중심이 되었다. 그 밖에 1세기부터 5세기의 로마 시대 유적과 예술품이 대성당 양쪽 광장에 전시되어 있다.


                                                                                                          뮌헨 Munchen

뮌헨은 남독일에 꽃피었던 독일 궁정문화의 중심지. 12세기 이래 바이에른 왕궁 비테르스바하 가(家)의 800년 왕성(王城)의 땅이다.

이 왕가에는 학문이나 예술을 깊이 사랑한 왕들이 대대로 배출되었기 때문에 시(市) 안팎에는 그들이 건설한 호화로운 궁전들이나 방대한 양의 미수품이 남아 있다.‘바바리아’라는 바이에른의 영어이름이라고 쓰여진 여행책자를 자주 보게 되는 데, 원래 이 지방이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무렵에 붙여진 라틴어 이름 Barvaria에서 유래한다.

님펜부르크 궁정 (Scholss Nympenburg)


1664년에 짓기 시작하여 19세기 중엽까지 증축이 계속 되었다. 원래는 비텔스바하 가(家)의 여름 별궁이었다.르네상스 식의 넓은 정원에는 독일 제일의 로코코 식 수렵용 소궁전이 유명한 아말리엔부르그 Amalienburg와 궁정의 목욕풀장인 Badenburg, '차(茶)의 저택‘이라고 불리는 아시아풍 내부 장식을 한 파고덴부르그 Pagodenburg 등의 소궁전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올림픽 공원 (Olympiapark)
1972년의 뮌헨 올림픽 때 만들어진 스포츠 공원이다. 시가지 중심부에서 북서쪽으로 4 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8만명을 수용할수 있는 메인 스타디움과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 풀장등이 있으며, 오전과 오후 두차례 가이드 투어가 있다. 공원 안에는 높이 290m나 되는 올림픽 탑이 있는데, 현재는 텔레비젼 탑으로 사용되고 있다. 182m되는 곳에 전망대와 회전 레스토랑이 있다.
슈바빙 (Schwabing)
뉴욕의 소호,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 등과 나란히 불리는 뮌헨의 예술 중심지.
첨탑이 인상적인 프라우엔 교회(Frauen kirche, 성모교회)
1488년에 벽돌로 지어진 고딕양식의 교회로 뮌헨을 대표하는 이 도시 최대의 대성당으로 19세기 초반 이래 남바이에른의 수도사 교구교회로서 명예를 떨치고 있는 곳이다.교회는 마리엔 광장 북서쪽에 위치하며, 구슬모양의 돔형태 첨탑이 인상적인 두 개의 탑이 있는데, 북쪽 탑은 높이가 99m, 남쪽 탑의 높이는 100m이다. 탑의 가장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오를 수 있으며 여름 시즌에는 이 곳에서 바라보는 바이에른의 산들이 장관이다.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1622년의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의 묘가 있다.
뮌헨의 중심, 마리엔 광장(Marienplatz)


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광장이다. 광장을 둘러싸고 신시청사를 비롯하여 프라우엔 교회 등 관광명소가 집중되어 있다. 차량의 통행을 금하고 있는 광장 주변에는 고급 부티크 및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어,산책과 쇼핑하기에 좋다. 중앙에는 시의 수호신 마리아의 탑 Mariensaule이 서 있다.
세계의 명차 BMW의 역사, BMW 박물관(BMW Museum)
BMW의 발전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퓌센 Fussen


중세 도시 퓌센에는 4km쯤 떨어진 곳에 슈반가우 숲이 있고, 그 숲에는 한자락에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성을 건축할 때 모델로 삼았다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일명 "백조의 성")이 솟아 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Castle - New Swan Castle)은 "새로운 반석위에 앉은 백조"라는 뜻으로, "슈반가우"라는 작은 마을에 있다.

이 성은 중세 기사 전설에 매료된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에 의해서 1869년부터 1886년에 건축되었다. 왕은 17년 동안 짓고 102일 밖에 이곳에서 살지 못했다고 한다. 성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루트비히 2세의 고독하며 기구한 죽음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동화의 나라'라 불리는 퓌센을 더욱 신비스럽게 하고 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Scholss Meuschwanstein)
예전에 바이에른 국왕 루드비히 2세가 17년의 세월과 거액의 돈을 들여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아름다운 성(城)이다. 중세 동화 그대로의 환상적인 자태는 보는 사람을 매료시키지 않을 수 없다. 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성을 만들 때 모델로 삼았다고 도 전한다. 중세식이지만 성을 지은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모체, 호엔슈반가우 성
(Schloss Hohenschwangau)

낡은 슈반스타인(Schwanstein) 성을 바이에른 왕가의 황태자이며 루드비히 2세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1832-1836년에 걸쳐 신고딕 양식으로 재건축한 성이다. 성은 노란색을 띄고 있으며 언덕위에 세워져 있어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알프스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노버 Hannover


하노버는 영국과 베를린․모스크바 등을 연결하는 동서의 경계와 스칸디나비아에서 알프스를 넘어 로마까지를 연결하는 남북의 경계가 교차하는 유럽 대륙의 접점에 위치한 도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도시가 거의 파괴되었지만, 그 후 많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복구되어 현재에는 독일 굴지의 산업․경제 도시가 되었다. 연구는 약 55만으로 니더작센 주의 수도이다.

헤렌하우젠 왕궁 정원 (Konigliche Garten Herrenhausen)

17세기에 건축된 바로크 정원으로, 그로사 가르텐․게오르겐 가르텐․베르헨 가르텐․베르크 가르텐의 4개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그로사 가르텐은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나무숲과 꽃, 그리고 조각까지 기하학적으로 배치되어 그 정확함과 정연한 모양은 감탄할 만하다. 중앙에는 큰 분수가 있고, 정원 극장에서는 매년 하노버와 관계가 있는 헨델의 수상음악이 연주되는 이벤트가 개최된다. 또한 베르크 가르텐에는 난초로 유명한 식물원과 하노버 왕가의 무덤이 있다.

                                                                                                         함부르그 HAMBURG

함부르크라고 하면 독일에서도 두 번째로 큰 근대적인 대도시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그 역사도 깊어서 기원 후 800년에는 대사교구로서 번성하였다. 도시의 3분의 1을 태운 1842년 대화재와 제2차대전과 항구의 확대로 인해 옛 시가는 거의 사라져버렸지만, 도시를 걸으면 조심스럽게 복언된 귀중한 건물과 도로를 종종 볼 수 있어서 당시의 모습을 실감나게 해 준다. 또한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로 정식 명칭은 '자유 한자 도시 함부르크'이다. 13세기에 시작된 한자동맹시대 이래 자유와 독립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렌스부르크 성(Ahrensburger Schloss)

1595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어진 성으로 큰 공원이 있다. 1930년 초까지는 개인소유였기 때문에 잘 보존되어 있다.

텔레비젼 탑(Fernsehturm)

프란텐 운트 프로멘 공원의 서쪽 부근에 있는데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전체의 높이가 271.5m.

예니슈하우스 (Jenischhaus)

예니슈하우스는 16~18세기에 걸쳐 상류 계급 주택이었으며 공원 주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인상적인 곳이다.

캡틴 캐빈(Captains Cabin)

장크트 파울리 부두 가까이에 있는 바다와 관련 있는 상품들을 모아놓은 선물 가게이다. 다른 여타의 상품보다 병 속에 든 모형 범선 등이 수집광들에게 인기있는 쇼핑 품목이다.

성 미카엘 교회(St. Michaelskirche)
'미카엘'이라는 시민의 이름에서 친숙한 브루클린의 아름다운 교회, 탑의 전망대에 서면 도심의 알스터 호수, 엘베강, 함부르크 항구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알스터호(Alstersee)
도시 중앙에 있는 인공 호수로 넓이가 184헥타르나 된다. 케네디 다리와 롬바르츠 다리를 경계를 북쪽이 외 알스터 호, 남쪽이 내 알스터 호로 구분된다.


                                                                                                               베를린 BERLIN


베를린은 15C 브란덴부르크 제국의 수도였으며 이후 18세기 초 프로이센 왕국, 19C 후반 비스마르크의 제 2독일제국의 수도였다. 2차 세계 대전이후 페허가 된 베를린은 프랑스의 꼬르뷔지 등의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이루어져 현대적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20C 들어 학문 예술의 전성기를 맞아 유럽 최대의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독일 통일과 더불어 다시 독일의 수도가 된 베를린은 신생 독일의 중추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옛 왕실 사냥터 티어가르텐(Tiergarten)

베를린 중심에 자리잡은 티어가르텐은 거대한 숲의 공원으로 베를린 시민들에게 맑은 공기를 만들어 주는 허파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는 곳이다. 위치는 베를린 동물원 북쪽에서부터 브란덴부르크 문에 이르는 길이 약 4km, 폭 1km에 걸친 방대한 규모의 공원이다.

티어가르텐(Tiergarten)은 '동물원', '사냥터'라는 뜻으로 16세기에 프로이센 왕국의 여러 황제들과 귀족들을 위한 사냥터로 만들어졌기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여진 것이었다. 그후 18세기에 공원으로 바뀌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으며, 지금은 매년 6월 이곳에서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 '러브 퍼레이드'를 벌이고, 공원에서는 시민들이 나와 산책 또는 바비큐 파티를 즐긴다.

전승(戰勝) 기념 탑 (Siegessaule)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서쪽으로 뻗은 6월 17일 거리 des 17 Junistr.(이 이름은 1953년 이날에 동베를린에서 일어난 폭동에서 유래한다)의 양쪽은 티어가르텐이라는 공원이다.

티어가르텐 바로 중심에 황금으로 빛나는 전승 기념탑이 서 있다. 이 탑은 원래의 사당 앞뜰에 있던 것이 이곳으로 옮겨졌다. 프러시아가 1864년 덴마크에게, 1866년에는 오스트리아에게, 1871년 프랑스에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탑이다.
카이저 빌헬름 교회(Kaiser Eilhelm Gedachtniskirche)와 쿠담대로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Kaiser Wilhelm Gedachtuiskirche와 오이로파 센터을 중심으로 뻗는 쿠담대로와 타우엔친 대로가 베를린의 상업 중심지이다. 이런 번화함과는 반대로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전쟁의 상흔을 생생하고 처참하게 보여 주고 있다. 교회 그 자체는 19세기 말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이지만,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옆에 현대적으로 만들어진 새 교회가 사용되고 있다.
브란덴브르크 문(Brandenburg Tor)
1788~91년에 걸쳐 세워진 개선문. 예전에는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관광명소의 하나가 되었다.
샤를로텐부르크성(Schloss Charlottenburg)
17C에 세워졌으나 전쟁으로 불타 현재는 80%정도 복원된 상태이다.프리드리히 1세의 부인인 소피샤르로테 왕비의 여름별장으로 지어졌으며, 1695년이후 100여년에 걸쳐 증축되어 본관의 길이가 무려 505m에 달한다. 베를린의 대표적인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영국식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정원과 도자기 전시실이 볼 만하다.


                                                                                                      라이프치히 Leipzig

독일 작센주(州) 남서부에 있는 도시. 멘델스존의 생가가 있으며 음악가 바흐가 일했던 성당과 무덤 기념관, 동독비밀경찰박물관 등이 볼거리다. 동독시절 최대의 공업도시였다는 명성도 가지고 있다.

2006년에는 월드컵 예선전이 열리는 독일 도시들중의 하나로 선정되어 도시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가는 등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구 동독의 도시 이미지를 확실히 벗고 새로운 출발을 해나가고 있는 도시다.

베를린에서 182km 남서쪽에 있는 도시로, 비옥한 라이프치히 저지에 위치하며, 엘베강(江)의 지류인 바이세엘스터강에 면한다. 중부 유럽에서 교통의 요지로 중세부터 상업도시로서 발전했고, 15세기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무역박람회는 유럽 각지로부터 많은 상인을 끌어들여,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독일의 최대 무역박람회로 알려져 있었다. 전후에는 그 중요성이 저하되긴 했으나 지금도 매년 봄에 라이프치히 박람회가 개최된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독일의 인쇄업·출판의 중심지로서, 400개 이상의 출판·인쇄회사가 있었으며, 도서출판업은 지금도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그 밖에 철강·기계·화학·섬유 등의 공업이 발달했으며, 주요 공장지구는 바이세엘스터강의 서안(西岸)과 동쪽 교외에 전개되어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라이프치히대학을 비롯하여 연극·예술·미술학교가 있으며,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과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토마스 합창단 등에 의해 음악적 전통이 이어지고, 오페라 극장(1963) 등이 있다.

게반트하우스
독일 작센주(州) 라이프치히에 있는 콘서트 홀.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구관 건물에서는 1781년부터 독일 최초의 민간인 오케스트라인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해왔고, 멘델스존과 쿠르트 마주어(KurtMasur)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이 이곳에서 상임 지휘자로 활약했다. 지금의 건물은 루돌프 스코다가 1977년과 1981년 사이에 지었다. 콘서트 홀의 정면 중앙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콘서트 홀의 자리 배치는 원형 경기장의 모습을 본땄으며, 가운데 연주 단상이 있고 이를 육각형 모습으로 약 1,900개의 좌석이 둘러싸고 있다.
니콜라이 교회
성 토마스 교회와 함께 라이프치히 기독교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중요한 곳이다. 또한 1989년에 시작되어 1990년 10월 3일에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평화 혁명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1165년에 처음 건축되었고, 15세기와 16세기를 지나면서 후기 고딕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1539년에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와 유스투스 요나스 1세가 이곳에서 설교를 함으로써 본격적인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그 후 1784년부터 니콜라이 교회가 작센주의 개신교 본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교회 내에 있는 오르간은 1862년에 만들어졌는데, 19세기에 바흐의 오르간 곡들이 많이 연주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해 월요일마다 열렸던 월요데모(Montagsdemonstrationen)는 처음에는 몇 명 오지 않는 조용한 기도회로 시작되었지만, 독일 통일을 얼마 앞둔 80년대 말에는 매주 십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서 민주주의, 선거와 여행의 자유, 또 독일 통일을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는 거대한 행사가 되었다. 1999년에는 라이프치히 출신의 미술가인 안드레아스 스퇴츠너가 월요데모와 평화 혁명을 기념하는 기둥을 예배당 안에 세웠다.
성 토마스 교회
1212년에 짓기 시작해 1496년에 완공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마너 성가대의 근거지이기도 하며 16세기 초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종신 서원을 했고 1539년에 성령 강림절 기념 설교를 했었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무엇보다도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25년에 걸친 활약으로 인해 더 유명해졌다. 바흐는 일생을 마칠 때까지 토마너 성가대의 지휘를 담당 했었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유명한 작품들 중 상당수를 이 교회에서의 연주를 위해 작곡했다. 바흐의 유해가 1950년부터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토마너 성가대는 세계적인 남자 어린이 합창단으로 1212년에 구성되었고, 현존하는 성가대 중 가장 오래되었다. 교회 건물 앞에 있는 바흐의 동상은 1843년 멘델스존이 추진하여 세워졌다

라이프치히 대학

보헤미아 왕 벤체슬라스 4세가 강행한 대학헌장 변경에 항의해서 프라하대학교를 떠난 교수와 학생들을 위해 작센 대공(大公)이 1409년 12월 2일에 세운 고등교육기관이다. 교황 알렉산드르 5세의 인가를 받아 라이프치히에서 4개 학과로 시작하였다. 종교개혁기인 1539년 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들이고 요아킴 카메라리우스의 지도 아래 개혁을 단행하여 독일 최대의 대학으로 탈바꿈하였다.

17~18세기에는 상업도시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대학교수와 지도적 시민층의 사상적 교류를 왕성하게 하였으며, 19세기 후반 이후 자본주의 사회의 급격한 발전과 더불어 학술연구도 눈부시게 발전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분단됨에 따라 동독에 편입되어 1953년 교명이 '라이프치히 카를마르크스대학'으로 바뀌었다가 1990년 통일 이후 원래의 교명을 되찾았다.

2010년 기준 신학부, 법학부, 역사·예술·동양학부, 언어학부, 교육학부, 사회과학·철학부, 경제·경영학부, 체육학부, 의학부, 수학·컴퓨터학부, 생명과학·약학·심리학부, 물리·지구과학부, 화학·광물학부, 수의학부로 구성되며, 학위과정은 디플롬(Diplom), 마기스터(Magister), 국가시험(Staatsexamen) 및 박사학위로 구성된다.도시 곳곳에 대학 건물이 흩어져 있으며 중심 건물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다. 1543년에 설립되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도서관에는 중세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부설기관으로 이집트·고대유물박물관, 악기박물관, 1542년 세워진 식물원이 대표적이다. 대학부설연구소로는 과학·이론센터, 인문·사회학센터, 프랑스연구센터, 환경연구센터 등이 있다.

철학자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 화학자 빌헬름 오스트발트(Wilhelm Ostwald),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물리학자 구스타프 헤르츠(Gustav Hertz),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등이 교수로 재직했다. 졸업생 또는 교수로 노벨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인물은 구스타프 헤르츠(1925, 물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32, 물리), 펠릭스 블로흐(1952, 물리)이다.


                                                                                                  바이마르 WEIMAR

튀링겐의 작은 도시인 바이마르(Weimar)는 에르푸르트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일름강(江) 연안에 있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독일 정신문화의 중심이자 고전문학의 메카가 되었으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와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를 비롯한 많은 작가와 학자가 모여들었던 곳이다. 이곳의 주변 지역에 펼쳐진 수준 높은 공원과 건축물 등 모두 12건은 당시의 번영했던 도시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드레스덴 (Dresden)


일찍이 작센왕국의 수도였던 드레스덴, 18세기 전성기를 구가했던 아우구스트 대왕 시절, 호화롭고 웅장한 건축물이 앞을 다투어 세워졌고 또한 도자기 제조로 성공하여 유럽 각지의 미술품이 수집되었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 '엘베의 피렌체' 라 칭송되기도 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대공습으로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했으나 전후 충실히 재건되어 지금은 영화롭던 작센왕국 수도의 위용을 다시 찾게 되었다.

역대 작센 군주의 성이었던 드레스덴 성(Dresdner Schloss)
12세기부터 역대 작센 군주가 살던 성으로 증축과 복원을 거듭해 복합적인 스타일의 건축물이 되었다. 대공습으로 파괴된 후 현재도 복원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아우구스트거리 옆 슈탈호프 벽에는 마이센 자기 타일로 만들어진 '대공의 행진'이라는 길이 101m, 높이 8m의 벽화가 있는데, 27,000개의 타일이 쓰였다고 한다.르네상스 양식의 성으로 한때 왕가의 거주지 였으며, 성안에는 교통박물관, 프라우엔 교회, 브릴의 테라스 등이 있다.특히 괴테는 이곳을 '유럽의 테라스'라고 불렀으며 신구시가지와 엘베강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프라우엔 교회 (Dresdner Frauenkirche)
드레스덴에 위치한 루터파의 개신 교회이다. 노이마르크트(Neumarkt)광장에 있다. 바로크 양식으로 1726년에서 1743년에 걸쳐 건축됐다.독일 바로크 양식 건축의 대가인 게오르게 베어가 설계 했다. 이 교회의 상징은 96m 높이의 돔으로, 로마 베드로 성당(St. Peter'sBasilica)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돔과 기술적인 면에서 견줄만 하다.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전쟁이 끝난 후드레스덴 시민들은 언젠가 재건축 할 것을 생각하며 무너진 프라우엔교회의 돌들을 모아 번호를 매겨 보관했다. 독일 태생의 미국인 생물학자 귄터 블로벨은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 어린시절 프라우엔 교회의 본래 모습을 봤던 기억을 되살리며 1994년에 프라우엔 교회 재건 사업을 시작했다. 1999년 노벨 의학상을 받은 그는 상금을 모두 재건 사업에 기부했다. 여러 개인과 단체의 노력으로 재건 사업이 활발해졌고 2005년 재건이 끝나 옛 모습을 되찾았다.
드레스덴 구 시장광장 ( Altmarkt, Dresden )
독일 작센주(州) 드레스덴에 있는 옛 시장광장. 시청사와 십자가 교회등이 있으며, 드레스덴의 중심지 역할을 해 온 곳이다. 시청사의 탑위에는 금박을 입힌 높이 4.9m의 '황금 사나이' 입상이 서 있다. 1945년 심각하게 파괴되었는데 1953년부터 시작된 복원작업에 의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되찾았다. 시청사 건물 옆에는 외벽이 검게 그을린 십자가교회가 서 있는데 후기 바로크와 초기 고전주의 양식의건물이다.


                                                                                                   레겐스부르크 Regensburg


독일남동부 바이에른주의 하항(河港)도시.오버팔츠 행정구의 주도(主都)이다. 도나우 강(江)과 레겐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하항으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뮌헨·뉘른베르크·아우크스부르크·뷔르츠부르크 등과 함께 바이에른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꼽힌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인 레겐스부르크는 중세 시대에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유럽의 중요한 상업 거점이기도 했다. 레겐스부르크의 구시가지는 훼손되지 않은 중세 대도시의 모습을 특별히 잘 간직하고 있다. 귀족들의 저택과 가문의 탑, 대성당과 12세기에 지어진 돌다리 등이 이곳의 중요한 건축물들이다.

인구 12만 4400(2001). 다뉴브강에 면하며 전기․화학․금속공업․직물․피혁제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라다스보나(Radasbona)는 옛이름. 예로부터 취락(聚落)이 있었으나, 로마점령 후 179년 성채와 병영이 설치되었다. 4세기에 게르만인이 점령하였고, 535년경 바이에른족이 내주하여 바이에른대공의 거성(居城)이 되었다.

670년경에 수도원이, 739년에 주교좌가 설치되면서 남부독일의 그리스도교화의 중심이 되었다. 레겐스부르크의 황금시대는 상업이 번영한 12~14세기이다. 일찍부터 시장이 열려 있었는데, 12세기에 러시아상업중심지 키예프와 노브고로트 등으로 나가동방의 상품을 사들이는 <러시아행 상인>이 많았다. 제 2회와 제3회의 십자군은 이곳에서 집결하여 성지로 향하였다.

상인의 힘과 부(富)를 나타내는 것은 1146년에 가설(架設)된 다뉴브강에 놓인 330m의 <돌다리>와 성과같은 호화저택이다. 이탈리아풍의 탑이 있는 저택이 많고, 한때는 시중에 60개의 탑이 솟아 있었다고 전해지며 10층의 <금탑>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1245년에 제국도시가 되었으나 14세기 이후 뉘른베르크와 아우크스부르크의 상인에 밀려 쇠퇴하였다. 1519년 유대인을 추방하고 42년 종교개혁에 가담, 89년에는 예수회의 학교가 건립되었다.

1663~1806년 사이에는 제국의회가 시청사에서 개회되었다. 1809년 나폴레옹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어, 이듬해 10년 바이에른령이 되었다. 로마시대의 문, 성베드로 대성당 (13~16세기) 등을 비롯한 교회당, 구시청사(14~15세기), 신시청사(17세기) 등의 역사적 건축물이 남아 있다.

슈타이네르 브뤼케 [ Stgeinerne Brucke ]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다리. 레겐스부르크의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나우 강 위에 만들어진 이 석조 다리는 독일에서 가장오랜 된 다리로 약 800 여년 전인 1146년에 만든 중세 건축의걸작으로 꼽힌다. 당시에 310m나 되는 다리를 돌로만 만들었다는 것은 상당한 기술력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슈타트암호프와 레겐스부르크 구시가지
[ Old town of Regensburg with Stadtamhof ]

레겐스부르그의 구시가지는 2006년 7월 13일에 유네스코 지정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됐다. 독일에서 중세 대도시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해 놓은 레겐스부르크의 구시가지는 과거의 외형적인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세의 경제·정치· 종교적인발전을 잘 반영하고 있다. 레겐스부르크의 일부인 슈타트암호프(Stadtamhof)는 본래 하나의 도시였으나 1924년 4월 1일 레겐스부르크 시로 귀속되었다. 이곳은 도나우강(Donau R.)위로 놓인 슈타이네르 다리를 통해 레겐스부르크의 구시가지와 직접 연결되어있다.


                                                                                                  볼프스부르크 Wolfsburg


독일 중북부 니더작센주(州)에 있는 도시. 하노버 동쪽 70km 지점의 미텔란트운하에 면하여 있다. 독일의 중앙에 위치하며, 철도·아우토반·미텔란트운하 등이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700년경 헤슬링겐(Hesslingen)이라는 촌락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1132년에 처음 문헌에 나타난다. 1937년까지만 하더라도 자그마한 촌락에 불과하였지만, 1938년 폭스바겐 자동차회사의 본사와 공장이 들어서면서 급성장하였다. 공장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으나 1945년 재건하여 생산을 재개하였다. 이 도시 근로자의 다수가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우토슈타트 ( Autostadt )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자동차 전문 박물관.‘자동차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아우토슈타트는 2000년5월31일 문을 열었다. 폴크스바겐(Volkswagen)은 1939년부터 이곳에서 ‘비틀(Beetle: 딱정벌레)’이라는애칭을 가진 자동차를 생산해 왔는데, 공장 옆의 강을 따라서박물관을 세운 것이다. 베를린에서 고속철(ICE)로 약 1시간거리에 있는 아우토슈타트는 폴크스바겐의 고객센터 역할도함께 한다. 바이어들은 주문한 차가 마무리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으며, 공장에서 직접 차를 몰고 나올 수 있다. 이 자동차 테마공원은 개관 이후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자동차 전시관은 19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의 차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폴크스바겐, 벤틀리(Bentley), 아우디(Audi), 람보르기니(Lamborghini) 등 귀에 익숙한 명차들이 브랜드별 전시관 안에 진열돼 있다. 브랜드별 특성을 알리는 영상물을 상영하며, 속도를 실제 체험해볼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있다. 아우토슈타트의 랜드마크(land mark)는 20층짜리 쌍둥이 탑이다. 이 원통형 탑은 자동차 수납을 위한 공간으로,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안에 가득 찬 신형자동차들이 훤히 보인다. 다양한 자동차 디자인 전시물과 함께, 태양열을 이용하여 식물을 키우는 것을 보여주는 태양열 실험실, 밀도 높은 안개로 인해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안개 터널(fog tunnel) 등 흥미 있는 코스가 마련돼 있다. 음악축제와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며 레스토랑과 고급 호텔이 갖춰져 있다.


                                                                                                     로텐부르크 (ROTHENBURG)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의 약 4할정도가 파괴되고 소실되었으나, 완전하게 중세도시를 복원시켜놓은 곳으로 오랜 시간을 뛰어 넘어 근세에 그 가치를 인정받은 '중세의 보석'이라 칭송되는 고도이다.

특히 로텐부르크는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더욱 관광명소로서 빛을 발하는데 이곳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때문이다. 이 시즌에는 도시 전체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은은한 화려함을 자랑하여 크리스마스 마켓 곳곳에서 잘 구워진 아몬드의 고소한 냄새가 시장 곳곳에서 풍긴다.

로만틱 가도(街道) Romantische Strasse
로만틱 가도는 독일 중남부 뷔르츠부르크(Wuerzburg)에서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근처의 퓌센(Fuessen)까지의 약 360km에 이르는 휴양 도로로 중세 때 무역로이자 성지순례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중세의 분위기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우리가 현재 로만틱 가도라고 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전략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이 가도를 따라서 고딕풍의 성당과 통나무집 등 로텐부르크(Rothenburg) - 뇌르트링겐(Nordlingen)을 비롯한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의 중세풍의 모습이 남아 있는 소도시들이 잇닿아 있으므로, 여행자에게 유럽풍이라는 느낌과 더불어 정갈하고 인상적인 독일을 심어 놓는다. 동화 속에나 나올 듯한 아름다운 성,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대는 분수와 푸른 정원, 실외 까페와 레스토랑 오래된 호텔이 늘어서 있다. 퓌센 근처에는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가 건조한 노이슈반슈타인성(城)이 있다
5500개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야콥 교회(St. Jakobskirche)
야콥 교회는 1311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이다. 교회를 짓는데만 1311년부터 1484까지 170년이 걸렸다.특히 성스러운 피의 제단, 프란찌스쿠스 제단 등 15세기의 여러 제단과 5500개의 파이프로 된 오르간이 볼거리이다. 여름에는 1주일에 2회씩 오르간 연주를 한다
12세기에 세워진 마르쿠스탑(Markusturm)
마르쿠스 탑과 뢰더 아치는 도시가 정착된 12세기에 건립되었다. 마르쿠스 탑옆에는 지금은 로텐부르크 문서실이 된 옛날 교도소가 위치해 있다
유럽법의 1000년 역사, 범죄 박물관(Kriminakmuseum)
부르크가르텐에서 부르크거리(Burggasse)를 따라서 가다보면 범죄 박물관(Kriminalmuseum)에 도착한다. 박물관 건물은 1395년에 지어져서 1718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된 건물로 2000km²의 면적에 4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학 박물관은 1000년여간의 유럽 법의 역사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보여준다. 이전 사람들이 이전의 법제도하에서 어떻게 살았고 사소한 경범죄에 대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잘 알 수 있다.


                                                                                                     슈투트가르트 Stuttgart

슈투트가르트는 남서부 독일 경제의 중심도시다. 13세기에 도시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았고 1320년경 뷔르템베르크 백작의 주거주지가 되었으며 1482년 이후에는 뷔르템베르크 백작령, 공작령, 왕국, 주 등의 도읍지였다. 16세기에 번성하였으나 30년전쟁(1618∼1648), 루이 14세 때의 프랑스 침공(1681∼1684) 등으로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침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도심지가 완전히 파괴되다시피 하였다.

1945년 이후 많은 건물이 재건되었고 시청과 음악당 같은 건물은 현대식으로 새로 지었다.

전기, 자동차, 기계 등의 제조업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 밖에 섬유, 의류, 정밀기기, 맥주, 고급 목공예품과 가죽제품, 제화, 악기, 화학제품, 제지 등의 제조업이 활발하다. 특히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 본사가 이곳에 위치하며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을 처음 만든 곳으로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이 슈투트가르트에 소재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Mercedes-Benz Museum)
슈튜트가르트는 메르세데스 벤츠 차의 고향이며, 슈튜트가르트에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의 본사가 위치한다.2006년에 완공된 이 박물관에는 벤츠 1호차에서부터 최신모델까지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그 자체가 자동차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벤츠의 역대 승용차에서부터 항공기 엔진까지 모두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자동차 용품 뿐 아니라, 모자나 티셔츠, 액세서리 등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을 판매도 하고 있다.


                                                                                                       바덴바덴 Baden-Baden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에 있는 도시.슈바르츠발트의 오스강(Oos 江) 중류를 따라 자리잡고 있는 도시로 유럽에서 유명한 온천 휴양지 가운데 하나이다. 공원도 많으며 1821∼1824년 건설된 대규모 카지노도 있다.

3세기에 로마의 요새로 건설되었다. 광물이 함유된 온천수는 로마인들도 즐겨 사용하였으며, 로마 시대 목욕탕의 유적도 발굴되었다. 이들 유적은 황제 카라칼라(Caracalla) 시대에 스트라스부르성에 주둔하던 군대를 위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을은 한때 폐허가 되었으나 1112년 바덴 후작의 거성이 되어 18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1689년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가 다시 재건되어 프랑스혁명 때는 난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온천 휴양지로 유명해진 것은 1808년부터이지만 나폴레옹 3세 시대인 1850~1860년대에 유럽 귀족들의 휴양지가 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카라칼라 온천 (Caracalla-Therme)
레오폴트 광장에서 걸어서 한 5~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라칼라 온천은 초목이 무성한 강변 산책로와 유럽왕족들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1985년 최신 시설로 개장한 이곳에는 광천욕장, 사우나 등 옥내·외 7개 시설을 갖추고 있다.실내외 온수 수영장, 폭포탕, 기포 목욕, 거품 목욕, 사우나 등의 온천 시설과 카페도 있고, 사우나 외에서는 반드시 수영복 입어야 한다.


                                                                                                    뤼데스하임 Rudesheim

정식 이름은 뤼데스하임 암 라인(Rudesheim Am Rhein)이다. 라인강변, 타우누스산맥 기슭에 자리 잡았으며 라인강(江)의 진주라 불린다.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864년이다. 10세기 경 마인츠의 대주교들이 사용했던 브렘저성(城)은 1200년대에 주거지로 사용하였다. 이곳은 현재 포도주박물관으로 사용되어 포도주 제조에 필요한 도구, 각 시대별 포도주 잔 등을 전시한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로 만든 라인포도주가 유명하며, 포도주거래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중세의 특징인 목조주택과 옛 숙박업소, 좁은 거리가 잘 보존되어 있다. 니더발트 고원 정상에는 1871년에 이루어진 독일의 통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1883년에 세운 게르마니아 여신 기념비가 있다. 니더발트에서는 리프트로 아스만스하우젠과 연결된다. 티티새 골목이라 불리는 드로셀가세에는 포도주 가게와 기념품점이 많다.



                                                                                                      뷔츠부르크 Wurzburg

기원 전 1000년 경의 마인 강은 지금보다 훨씬 작아서 걸어서도 건널 수 있는 얕은 개울이었다. 그 얕은 개울이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켈트인이 요새 같은 집을 짓고 살았던 것이 이 도시의 시작이었다. 그후 8세기경에는 대사교의 본거지로서 번영을 누렸으며, 1402년에 창립된 대학이 지금도 남아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다. 제2차 세게 대전으로 거리의 8할 이상이 파괴되었지만 그 후 복구작업에 의해 도시가 훌륭하게 되살아나서 옛날의 좋았던 시절이 감추어져 있는 듯한 안정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마리엔부르크 요새 (Festung Maienburg)
1253년부터1720년까지 대사교가 거주했던 요새로 중세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요새의 정원 안쪽 막다른 곳에는 둥근 지붕의 마리아 교회는 기원전 1,000년 경 이곳을 지배하고 있던 게르만인의 신전이 있던 장소이다.그런데 그리스도교에 귀화한 영주가 706에 이 교회를 짓게 했다. 교회는 요새 안에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외벽이 두껍게 만들어져 있는데, 가장 두터운 곳의 두께는 3.5m나 된다.
레지덴츠 (Residenz)
완성은 18세기 중엽. 마리엔부르크 요새에 만족하지 않고 절대적인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대사교가 만들게 한 궁전이다.역에서 카이저 거리를 걸어 테아터 거리를 똑바로 가면 주차장이 되어 있는 큰 광장으로 나온다. 그 광장을 가로질러 궁전 입구에 가까이 가면 광장 중앙에 큰 분수가 보인다. 뷔츠부르크 시의 문장을 손에 들고 분수 꼭대기에 서 있는 것이 프랑켄 지방의 수호신인 여신 프랑코니아이기 때문에, 이 분수는 프랑코니아 분수라고 불리우고있다.


                                                                                                  고성 가도 Castles Road


유럽의 중심 국가로 성장하였던 프랑크 왕국을 시작으로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된 프로이센 제국을 거치는 동안 독일의 여러 도시에는 수많은 성이 세워졌으며 지금까지 보존되어 호텔이나 유스호스텔과 같은 시설로 개조되거나 관광명소로 활용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고성들을 쾰른에서 시작되어 프랑크푸르트까지 운하는 라인 강 유람선이나 독일의 만하임에서 체코 프라하까지 연결되어 있는 1000 Km의 가도에 위치한 70여개의 성이 있는 마을을 탐방할 수 있는 고성가도 (Catles Road)를 관광코스로 개발하여 활용하고 있다. 독일의 고성가도는 1954년 3월 중부의 만하임을 시작으로 하이델브르크, 하일브론, 로텐부르크, 뉘렌베르크의 3120 Km의 가도로 개발되었다가, 1994년 백탑의 도시 체코 프라하까지 연결되었다.



                                                                                                  프라이부르크 Freiburg

대성당을 중심으로 중세풍 건물이 아름다운 독일 남서부의 프라이부르크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州)의 중심도시중 하나다. 프라이부르크는 흑림(슈바르츠발트; Scharzwald)의 시작 지점이자 화창한 날씨로 와인 생산지로도 명성이 높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독일 남서부의 주도로써 메르세데스 벤츠의 도시 ‘슈투트가르트’이다. 바이에른과 마찬가지로 산업이 발달했으며 독일에서 연중 날씨가 좋기로 유명해 슈투트가르트를 비롯하여 프라이부르크, 카를스루에, 튀빙겐, 만하임, 하이델베르크 등이 주요도시이고, 스위스, 프랑스와 국경을 접해 있어 국경 도시에서는 서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이러한 바덴뷔르텝베르크 도시 중 대표적인 친환경 도시가 바로 프라이부르크이다.태양열을 중점적으로 활용하는 ‘솔라시티’이며,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한 건물들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태양의 도시’ 프라이부르크 시에서 태양 에너지 주거단지인 보봉(Vauban) 마을이다.

보봉 마을은 프랑크푸르트 도심에서 3㎞가량 떨어진 지역에 가족 단위의 생활을 고려해 설계 조성됐다. 5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보봉 마을이 탄소제로도시 또는 탄소중립도시로 태양 에너지를 이용한다.

보봉 마을에 들어서면 주택단지 곳곳의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이 있고, 보봉 마을의 태양광 에너지 주택은 일명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로 불린다. 단열을 통해 건물 내부의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한 주택이어서 패시브 하우스로 불리는 것이다. 또 마을 주차장 건물 지붕에도 태양광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헬리오트롭(heliotrope)은 솔라하우스와 함께 보봉 마을의 랜드 마크이고, 에너지를 소비하기만 하는 주택이 아니라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주택이다.세계 최초의 회전형 태양광 주택인 헬리오트롭은 주택 자체가 해바라기처럼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400도로 회전하는 원통형의 목조 3층 주택이다.

이 집은 태양의 움직임에 맞춰 회전하는데 발전량은 소비량의 5~6배로 잉여전력은 에너지회사에 판매하고 있다.

3중창과 단열재가 들어간 30㎝의 벽이 외부로 열이 빠져 나가는 것을 차단하고, 빗물을 저장해 사용하며 진공관과 우드 팰릿(wood pellet) 보일러로 물을 데워 난방에 사용하는 실험적인 주택이다.170만 유로(약 31억 원)가 들어간 이 집은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설비를 통해 자체 전기 소비량의 5배 이상을 생산해 지역 전력회사인 바데노바(badenova)사에 판매하고 있다.헬리오트롭은 소비되는 에너지가 모두 재생 에너지로 충당되고, 탄소 배출을 전혀 하지 않는 명실상부한 탄소제로주택인 셈이다. 이 집에는 태양 에너지 건축가인 롤프 디쉬씨가 가족과 함께 실제로 살고 있다. ‘시 에너지 공급기본 컨셉’은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의 에너지 접근방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첫째 ‘에너지 보존 정책’이다. 과도한 에너지소비를 줄여나가기 위해 시가 ‘절전형 전구’를 가정에 보급하거나 획득된 에너지의 유출을 단열로 줄이는 ‘저에너지주택’을 지원하고 보급하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기술개발을 통한 ‘에너지효율화 정책’이다. 버려지는 폐열을 냉난방에 활용하는 열병합발전시스템은 효율이 70~90%로 종래 대규모 발전보다 2배 이상의 효율을 가진다. 이 시스템은 메탄가스와 천연가스를 병용할 수 있어 쓰레기 매립지로부터 발생하는 연간 1천 ㎥ 이상의 메탄가스를 이용함으로써 에너지도 얻고 지구 온난화도 줄일 수 있다.

셋째, 배출물이 없는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에너지다양화 정책’이다.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등의 자연에너지를 적극 활용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다. 태양에너지는 프라이부르크 시의 에너지자립정책 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재생가능에너지원이다. 프라이부르크 시내의 태양광발전장치는 모두 60개소, 최고출력은 340kw이며 시민 1인당 태양광발전장치 시설 수는 독일에서 가장 많다.

태양의 도시’라 불리는 프라이부르크는 높이 60m의 중앙역 ‘솔라타워’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태양광전지를 부착된 건물을 볼 수 있다. ‘시민 참여형’으로 이루어진 드라이잠 축구경기장 서쪽 스탠드 지붕에 설치된 면적 60㎡ 대형 태양광발전장치는 태양에너지 모듈 5개 1구좌 1만 마르크로 101명의 시민들이 구입하여 설치되었는데 행정의 구상이 주민과 밀착하여 실천된 사례이다.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양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중앙역 옆에 건설된높이 60m의 19층 건물로 건물 벽이 모두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벽의 3분의 1이 태양광 집열판으로 덮혀 있는 ‘솔라타워’이다.

현재 운영 중인 30개의 솔라에너지 시설은 호텔, 학교, 상공회의소, 공장, 주거단지 등 형태가 다양하다. 기업과 교육기관이 함께하는 19개의 솔라에너지 프로젝트도 있다.

태양광 연립주택인 솔라 하우스는 동일한 규모의 일반 가정집보다 15%가량 건축비용이 더 소요된다. 하지만 태양광 발전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고려하면 추가로 소요되는 건축비가 2년가량이면 회수 된다.

실제로 솔라 하우스는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을 통해 전기를 생산해 판매하고 있는데, ㎾당 0.23유로에 전기를 구매하는 대신 0.5유로에 전기를 판매하고 있다.이로 인해 솔라 하우스는 잉여 에너지 주택(surplus-energy house)으로 불린다.솔라 하우스가 이처럼 잉여 에너지 주택으로 불리는 비결은 태양광 발전시설과 함께 완벽한 단열 시스템 때문이다. 솔라 하우스는 빛이 잘 들도록 모두 남향으로 시공된 것은 물론 집의 남쪽에는 큰 채광창이 설치돼 있다.또 단열재가 들어간 벽이 무려 30㎝이고, 창문은 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간에 아르곤 가스가 들어간 3중창이고 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열 회수 장치가 설치된 환기 설비도 갖춰져 있다.이처럼 집 안으로 들어온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솔라 하우스는 별도의 난방 시설이 없다. 난방 시설 없이도 겨울을 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여름에는 태양빛이 덜 들어오도록 슬라이드가 설치돼 있고 통풍이 잘 되는 구조여서 별도의 냉방 장치도 필요 없다. 당연히 에어컨이 필요 없는 주택 구조이다.

태양광 집열판을 사용하고 있는 보봉 마을 태양을 따라 회전하며 태양 에너지를 생산하는 헬리오트롭 / 랜드마크로 손꼽힘 프라이부르크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축구단(SC Freiburg)의 전용구장 드라이잠 강변의 바데노바
보봉 나무를 연료로 한 열병합 발전소  보봉의 태양광을 이용한 주차장
     솔라 하우스, 전기 판매…잉여 에너지 주택    솔라 하우스, 전기 판매…잉여 에너지 주택


                                                                                                              스위스 SWISS

․ 수도 : 베른(Bern, 12.9만명)
․ 인구 : 710만명(외국인 19.7% 포함)

․ 면적 : 41,284 km2(한반도의 1/5)

․ 주요도시 : 취리히(Zurich), 제네바(Geneve), 바젤(Basel), 로잔(Lausanne), 루체른(Luzern)

․ 민족 : 독일인, 프랑스인, 이태리인

․ 언어 : 독일어(65%), 불어(18%), 이태리어(10%), 로만어(1%)

․ 종교 : 로마 카톨릭(48%), 개신교(44%), 기타(8%)

․ 통화 : 1프랑(CHF)=1,310원 (2021.11)


[개 요]


스위스의 기원은 4C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게르만 민족의 대 이동때 스위스 원주민인 헬베티아 족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면서 현재의 원형을 이루었다. 신성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3C에 이르러 독립운동이 본격화되었으며,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벗어나 1648년 빈 회의를 거쳐 영세 중립국으로 승인되었다. 23개 주로 이루어진 연방공화국으로 수도 베른에연방정부가있다.

스위스 정치의 특색이라면 법률안에 대한 국민들의 최종 심사를 거치는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부시도록 푸른 호수와 만년설의 알프스를 가진 아름다운 나라 스위스는 평온하고 장대한 자연의 신비로움을 선사할 것이다.

[지 리]

면적은 약 41만1천㎢로 남한의 반정도로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프랑스 등의 국과와 접해 있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지대로 북서부에는 쥐라산맥, 그 옆으로는 제네바, 루쩨른, 취리히를 잇는 평평한 대지가 펼쳐진다. 알프스 산맥에는 몬테로사, 마터호른 등의 험준한 고봉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라인, 론, 다뉴브강의 발원이 되고 있다.

[기 후]

6-9월초까지는 여름으로 30℃를 넘는 더위가 계속되며 아침․저녁으로는 영하로 내려가는등 일교차가 매우 크다. 겨울인 11-4월말까지는 매서운 추위가 엄습하지만 여름과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은 지내기 좋은 기후이다. 북부 평원에는 기후가 온화하고 상쾌한 편이며 알프스 이남지역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따뜻하다. 고도 100m 이상 올라갈때마다 기온은 0.5℃씩 내려가며 산정상 지역은 여름에도 춥다.

[사회문화]

인구는 약 710만명으로 게르만 계가 전체의 65%를 차지하며, 그외에 프랑스계, 이탈리계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며 공용어로는 독일어(중부와 북동부 지역), 프랑스어(서부), 이태리어(남부), 레토로만어(남부)가 쓰인다. 종교는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이 50%씩을 점하고 있다. 스위스의 정치적 중심은 취리히, 바젤, 베른, 제네바 였으며, 이 곳에서 스위스의 문화 생활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궁중의 사치스런 예술이 아니라 스위스인의 미덕, 신중, 검소를 높이 평사하는 예술이었다.애국심이 강한 스위스인들은 작은 국가지만 영세 중립국을 유지해 오고 있다. 수도는 베른이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이 취리히, 제네바를 많이 찾고 있다.세계의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로 국제 적십자사 본부와 국제연합 유럽본부등 주요 국제기관이 위치해 있다. 따라서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한 각종 국제회의가 자주 개최되며, 프랑스에 인접해 있는 인구 16만의 작고 아담한 곳으로 고도 375m이다. 프랑스 어권의 대표도시이며, 문화적 도시로 경관이 수려한 레만호, 명소와 사적들도 풍부한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주요 산업은 시계 제조업, 보석세공, 정밀 기계, 의료기계공업 등이다. 또한 레만호의 서쪽, 론 강이 지중해로 빠져나가는 곳에 위치해 있어 교통의 요충지이다.

                                                                                                       취리히 Zurich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로 국제 금융, 경제 및 상업의 중심지로 아름다운 취리히 호수와 리마트 강 주위로 잘 보존된 중세의 건물들, 길드 하우스들이 호화로운 현대적 쇼핑거리와 조화를 이룬 조금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수없이 많으며, 오페라 하우스, 극장과 더불어 음악회 및 기타 국제적인 행사가 끊임없이 개최된다.요리의 천국, 미술품과 경매의 중심지, 문학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또한 반호프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쇼핑가로 일류 디자이너의 화려한 의상실과 시계, 보석상들이 즐비한 곳이다.

* 취리히 평균기온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기온(°C)

0

1

5

8

12

16

18

18

15

10

4

1

강수량(mm)

60

60

68

83

101

127

127

124

99

83

71

71



프라우뮌스터 교회 (Fraumunster)


취리히를 흐르는 리마트강가에 위치한 성당으로 원래는 9세기 경에 루트비2세에 의해수녀원으로 지어졌다.12세기 이후로는 고딕양식으로 변형되어지는데, 18세기쯤에서 지금의 시계탑까지 완성되었다.특히 성당안으로 들어서면 성가대 뒤쪽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빛을 발하는데 이것은 바로 샤갈의 작품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마리아상이 있다.
성피터 교회 (St. Peter Kirche)
후기 고대 양식의 13C 타원에는 문자판이 10m에 달하는 유럽에서 가장 큰 시계가 붙어 있다. 내부에는 핑크 오렌지색의 대리석 기둥이 정교한 치장벽토, 수정 샹들리에와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한 바로크양식의 회의장이 있다.

루체른은 중세의 문화와 자연미, 통일성과 20세기의 문명의 이기가 잘 결합되어 있는 천의 얼굴을 가진 매혹적인 도시이다. 알프스와 비에르발트스태터 호수를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어 더욱 매력적인 곳이다.16세기에 번성했던 예술기법으로 채색된 벽화들이 좁은 골목과 화려한 광장을 장식하고 있으며, 이곳들은 상점과 부티크로 가득차 있다. 봄부터는 비에르 발트스태터 호수에 보트행렬이 이어지며, 호수 주변으로는 전형적인 스위스풍의 건축물과 지중해풍의 경관이 어우러져 더욱 운치있다. 루째른에서는 리기산, 필라투스, 티틀리스산 등도 찾아 볼 수 있다
반호프스트라세 (Bahnhofstrasse)


호숫가에 위치해 있는 중앙역에서 Froschengraben에 이르는 곳으로 보리수가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금융가와 호화로운 상점들, 현대식으로 건축된 주택가가 있으며 스위스 연방의 중심지이다.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Grossmuenster)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로마네스크 성당으로 종교개혁의 어머니 교회로 일컬어지고 있다.이유는 스위스의 종교 개혁가 츠빙글라스가 1529년부터 임종할 때까지 이곳에서 설교를 했기 때문이다. 그로스뮌스터 대성당의 꼭대기는 18C돔으로 장식된 높이 60m의 15C 쌍둥이 고딕식 탑으로 취리히의 가장 특징적인 상징물이다.


                                                                                                     루체른 (LUZERN)

루체른(Luzern)은 중세의 문화와 자연미, 통일성과 20세기의 문명의 이기가 잘 결합되어 있는 천의 얼굴을 가진 매혹적인 도시이다. 알프스와 피어발트슈테터 호수를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어 더욱 매력적인 곳이다.도시는 로이스(Reuss) 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북쪽에 중앙역이 위치하며 남쪽에 구시가가 펼쳐진다. 특히 남쪽 구시가 호수변으로는 16세기에 번성했던 예술기법으로 채색된 벽화들이 좁은 골목과 화려한 광장을 장식하고 있으며, 이곳들은 상점과 부티크로 가득차 있다봄부터는 피어발트슈테터 호수에 보트행렬이 이어지며, 호수 주변으로는 전형적인 스위스풍의 건축물과 지중해풍의 경관이 어우러져 더욱 운치있다. 루체른에서는 리기산, 필라투스, 티틀리스산 등도 찾아 볼 수 있다.

필라투스 산 (Mt. Pilatus)
루쩨른의 상징이자 스위스 관광의 백미인 필라투스산은 세계에서 가강 가파른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오르는데 그 경사가 45°나 된다.정상에는 루쩨른 일대와 알프스를 조망할 수 있는 식당과 호텔이 있으며 하이킹 코스와 여름에만 가동하는 롤러코스터(1,200m)가 있다. 1996년 5월 전면 보수를 끝내고 재개장했으며, 크리엔스에서 프레크뮌테크와 필라투스까지 새 대형 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케이블카는 연중 무휴이나 톱니열차는 11월말에서 5월중순까지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
빈사의 사자상 (Lowendenkmal)
대성당에서 뢰벤거리를 300m쯤 올라간 거리인 빙하공원 옆에 있는 작은 공원안에 위치해 있다.자연석에 세겨져 있는 이 조각은 1792년 프랑스 혁명때 파리에서 루이 16세가 머물던 궁전을 지키다 전멸한 800명의 스위스병사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 졌다. 이 근처에는 대사원, 빙하공원, 스위스 교통 박물관, 바그너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카펠교 (Kapellbucke)
1333년에 완성되었으며 기와지붕이 있는 목조건물로 루체른의 상징이다. 길이가 200m에 달하며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는 모두 112장의 삼각형 널판지 그림이 걸려 있는데 당시의 중요한 사건이나 루체른 수호성인의 생애등이 그려져 있다.17세기의 화가 하인리히 베크만의 작품으로 다리 중간에는 팔각형 수탑이 있다. 이는 도시의 방위탑으로서 시민들에게 경종을 울리던 종각과 공문보관소 그리고 고문실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

스위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휴양지로 빼어난 아름다움과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시인과 예술가, 문인들 자연애호가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알프스의 다양한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인터라켄 Interlaken

인터라켄 (567m)은 툰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 사이에 위치한 산악 휴양지로 녹음이 우거진 대지 위에는 유서 깊은 건물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서 있고 시내 중심에서는 융프라우의 장엄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국제 관광도시이다.융프라우 지구의 관광 기점인 인터라켄은 각 지역으로 교통편이 잘 발달되어 있어 다양한 코스로 당일치기 여행을 즐기기에도 적당한 도시이다.

툰호수(Thunersee), 브리엔츠 호수(Brienzersee)
인터라켄의 좌우에 위치한 두 개의 호수로 툰호수는 길이 약 18㎞ , 너비 약 3㎞로 중세풍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박물관과 사원에서 바라보는 툰호수는 매우 아름답다. 툰호수에 비해 약간 작은 브리엔츠 호수는 길이 14.5㎞, 너비 2.5㎞로 화려함보다는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라우터브루넨 (Lauterbrunnen)
장대한 폭포로 라우터브루넨은 '울려퍼지는 샘'이라는 뜻이다. 특히 낙차가 300m에 달하는 슈타우프바흐 폭포는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는 장관을 연출한다.
하르더 쿨름 (Harder Kulm)
인터라켄의 북쪽에 있는 전망대이다. 이곳에서는 알프스의 장엄한 광경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들이 짧은 시간동안 알프스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의 높이는 1,322m이며,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다.
융프라우요흐 (Jungfrau)
유럽의 지붕인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는 젊음을 뜻하는 Jung 과 봉우리를 뜻하는 Fraujoch 의 합성어 이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처녀봉인 융프라우요흐는 높이 3454m에 이르며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와 그림같은 호수가 몹시도 아름다운 곳이다. 융프라우요흐를 오르는 톱니바퀴기타는 14년에 걸쳐 아이거와 뮌히를 관통하는 터널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유럽 최정상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멋진 식사를 즐길 수 있으며 얼음궁전, 스핑크스 테라스를 관광 할 수 있다. 특히 전망대 스핑크스 테라스로 나서면 쌓여 있는 눈에 반사되는 눈부신 빛속에서 웅장히 그 자태를 드러내는 융프라우 영봉과 크고 작은 빙하를 볼 수 있다.특히 여름에는 푸른 녹색의 초원으로 바뀌면서 하이킹, 등산, 자전거타기 및 번지점프, 래프팅, 패러들라이딩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몽트뢰 Montreux

스위스가 세계적인 관광 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은 몽트뢰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몽트뢰(375m)는 스위스 관광 산업의 발생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의 상류층에서는 스위스로 여행하는 것이 유행했는데 몽트뢰로 향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였다. 스위스에서 최초로 호텔이 등장하게 된 곳도 몽트뢰이다. 현재도 몽트뢰는 세계적인 유명한 고급 휴양지로 손꼽히고 있는데 특히 7월에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발로 더욱 화려하고 활기에 넘치는 도시로 변한다.

시용 성 (Chateaux de Chillon)
원래 이탈리아에서 알프스를 넘어 오던 동방의 상인들에게 통행세와 물품세를 징수하기 위해 9세기에 세워진 건물로 13세기까지 수차례의 개축을 통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호숫가의 튀어나온 바위 위에 세워져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호수에 떠 있는 듯이 보인다. 카톨릭 신자였던 프랑스의 사보이 공에 의해 현재의 스위스, 프랑스 어권이 지배받던 시절에는 제네바의 종교 개혁자 프랑수아 보니바르가 이곳에 유폐되기도 했다. 바이런은 프랑수와 보니바르를 모델로 하여 그 유명한 서사시 <시용성의 죄수>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체르마트 Zermatt


이탈리아와의 국경을 이루는 몬테로사 산괴의 북쪽 비탈면, 해발고도 1,620m 지점에 위치하며 마터호른이나 몬테로사까지는 승강기와 등산철도가 통하고 있다. 주민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가톨릭 교도가 대부분이다. 암벽이 노출된 ‘마텐’이라고 불리는 풀밭에서는 방목이 이루어진다. 고지 휴양지로서, 샤모니 등과 함께 알프스 등산 및 스키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빙하특급 (Glacier Express)


스위스의 대표적인 산악 휴양지를 횡단하는 총길이 300km의 기차 루트.

1890년부터 1930년까지 40여 년에 걸쳐 건설했다. 그라우뷘덴주(州) 장크트모리츠의 고지(高地) 엥가딘과 다보스에서 출발하여 쿠어 , 디센티스, 안데르마트, 브리크(Brig) 등을 거쳐 발레주(州) 체르마트를 기본 구간으로 하는 횡단 노선이다. 7개의 골짜기, 291개의 구름다리, 91개 터널이 포함되며 전 구간 운행시간은 8시간이다. 이름은 특급이지만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세계에서 제일 느린 특급열차’로 불린다.전 루트 중 가장 낮은 구간은 고도 600m인 쿠어이고 가장 높은 구간은 고도 2,044m의 오버알프 고개(Oberalp Pass)이다. 오버알프 고개로 가기 전 급경사를 오르기 위해 디젠티스에서 톱니 바퀴 기관차를 연결한다. 구간 중에는 270˚ 회전하는 터널도 포함되며, 알불라 구간(Albula Line)은 2008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인 ‘알불라·베르니나 문화경관지역의 라에티안 철로(이탈리아와 공동의 다국적 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생모리츠 Saint Moritz

스위스의 남동부에 있는 휴양지로 인구 10만 미만의 소도시이다. 1928년 제2회 동계 올림픽 대회와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후 첫 동계 올림픽 대회(제5회 ; 한국이 독립 후 최초로 참가한 올림픽)와 제41차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 총회가 개최되었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산들로 둘러 싸인 온천지•관광지로서 15세기경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겨울에는 유럽의 동계 스포츠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생모리츠 호반에는 호화 호텔이 즐비하여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모인다.



                                                                                                                   바젤 Basel

프랑스 및 독일과 접경하는 국경도시이다. 바젤이 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은 374년이었으며, 7세기에 주교청(主敎廳) 소재지가 되었고, 1501년에 스위스 연방에 가맹하였다. 서쪽으로 흘러온 라인강이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스위스 라인란트의 입구에 위치하며, 상업·교통의 중심으로 스위스 제2의 도시이다.

주민의 2/3는 프로테스탄트이며, 대부분이 독일어를 사용한다. 내륙국 스위스를 바다와 연결시키는 위치에 있으며, 1924년에 신설된 라인항(港)은 공업원료·연료를 수입하고 제품을 수출한다. 본래 섬유공업이 활발했던 곳으로, 특히 염색업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가는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공업지역, 왼쪽은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나누어져 있다.1460년 창립된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과 18개의 박물관·국제결제은행·성서협회와 프로테스탄트 전도협회·고딕식 대성당 등이 있다. 그 후 1529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며, 오버라인 지방의 인문주의의 중심지가 되었다. 1917년 이래 해마다 4월에는 ‘스위스산업박람회’가 열린다.

시청사 (Rathaus)
시장 광장에 위치한 타는듯한 붉은 사암의 붉은 색 건축물로 한 눈에 눈에 띄는 건물로 정면은 프레스코화로 꾸며져 있다. 이 시청사는 지금까지도 시정부의 청사로 이용되고 있다. 옛 시청사는 1356년 큰 지진으로 크게 훼손되어 다시 지어졌다가 동맹연방으로 들어선 후 1504년에서 1514년에 걸쳐 새로 건축되었다. 시에서는 시청사의 공간이 부족하여 고민하던 중 1904년 탑을 양쪽으로 건축하면서 공간을 넓혔다.
마르크트 광장 (Basel Marktplatz)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시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바젤에서 가장 유명한 열린 광장이다. 1516년에 지어진 붉은 시청사 바로 옆에 있는 이 광장에서는 매일(일요일을 제외) 아침 8시 30분부터 시장이열려 신선한 야채와 과일 꽃들을 싼 값에 살 수 있다. 예부터 도시의 교통과 정치의 중심지였으며, 식료품들을 사고팔 수 있는 시장 역할을 해왔다.
                                                                                                         

                                                                                                             콘츠탄츠  Konstanz


프랑스어로는 콩스탕스(Constance)라고 한다. 보덴호(湖)의 서쪽 끝 라인강변, 독일과 이탈리아의 교역로에 위치하며, 스위스 국경과도 인접해 있고 관광 중심지이기도 하다.

4세기경 로마제국의 요새로 출발하였으며 6세기 말에는 주교 교구가 되었다. 주교들의 세력이 확대되어 신성로마제국의 군주로서 바덴뷔르템베르크와 스위스의 많은 영토를 지배하였다. 1183년 프리드리히 1세는 이곳에서 롬바르디아동맹을 인정하였으며, 1192년에는 제국 자유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또 콘스탄츠공의회(1414∼1418) 때는 체코의 신학자인 요하네스 후스(Johannes Huss)가 이곳에서 화형에 처해졌다(1417).종교개혁을 받아들였으며 1531년 슈말칼덴동맹에 가담하였다. 황제 카를 5세는 이 동맹을 분쇄한 후 이 도시의 제국 자유도시 자격을 박탈하고 동생(나중의 페르디난트 1세)에게 넘겨주었다. 1548년부터 오스트리아의 수중에 있다가 1805년 바덴에 할양되었다. 주교령은 1821년 폐지되고 교구도 1827년 폐지되었다.공학기술산업이 발달했으며 섬유, 화학, 전기 설비 등의 제조업이 활발하다. 역사적 건축물로는 11세기의 성당(15세기와 17세기에 증축됨), 1388년 건립된 공의회 건물(Council building), 도미니크수도원(Dominican convent:지금은 호텔) 등이 있다. 군인이자 비행가였던 하인리히 폰 체펠린(Heinrich von Zeppelin)의 출생지이기도 하며, 대학교도 자리잡고 있다.

콘츠탄츠 대성당
콘츠탄츠(Konstanz)의 주교좌성당이다. 콘스탄츠 대성당의 시작은 주교가 이곳으로 온 600년경으로 알려져 있으며, 역사적 문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780년이었다. 남서부 독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가운데 한 곳이다. 1052년에 붕괴되어 루몰트 주교의 감독 하에 재건축되었다. 1526년에서 1551년까지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주교가 성당을 떠나 있었다. 당시 스위스의 종교 개혁가인 츠빙글리의 성상 파괴 주장에 따라 성당 내부의 많은 종교 예술품이 파괴되었다.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파괴되었던 작품들이 복원되고, 새로운 종교 예술품들이 추가되었다. 특히 1637년에 완성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천장 장식이 유명하다. 성당을 상징하는 높은 첨탑은 19세기 초반에 신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다. 성당의 내부 건축은 바로크 양식과 고전주의 양식, 신 고딕 양식이 고루 혼합되어 있다.
보덴제 호수
슈바벤해(Schwäbische Meer)라고도 불린다. 빙하기에 라인빙하에 의해 형성되었다. 중부 유럽의 호수 중 벌러톤호(Lake Balaton), 제네바호(Lake Geneva)에 이어 세 번째로 크며,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다. 보덴호는 가장 큰 호수인 오버호(Obersee, 476㎢), 북쪽의 위베를링거호(Überlinger See), 서쪽의 운터호(Untersee) 그리고 북서쪽의 첼러호(Zeller See)와 그나덴호(Gnadensee)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총면적은 약 571㎢이다. 오버호(湖) 중간 지점이 가장 깊은데, 수심이 252m이다. 수량은 약 55㎦이다. 라인강, 브레겐처강(Bregenzer Ache), 도른비르너강(Dornbirner Ache)이 알프스에서부터 호수까지 퇴적물을 운반해온다. 따라서 호수는 남동쪽에서부터 점차 얕아진다. AD 43년 경 로마의 지리학자 폼포니우스 멜라(Pomponius Mela)가 처음으로 호수에 대해 언급했다.
                                                                                                         

                                                                                                                    제네바 GENEVA


영어로는 제네바(Geneva), 독일어로는 겐프(Genf)라고 한다. 레만호(湖)에서 론강(江)이 흘러나오는 유출구에 있으며, 취리히와 바젤에 이어 스위스 제3의 도시이다.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각종 국제기관이 모여 있어 국제회의가 자주 열린다. 서쪽은 쥐라산맥, 남쪽에는 몽블랑산(4,807m)을 중심으로 하는 사브 와 알프스가 가까이 있다. 스위스의 남서부에 있기 때문에 프랑스와 스위스를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가 지나고, 시 북서쪽 5km 지점에는 크왕트랭 국제공항이 있어 스위스 서쪽 교통의 요충지이다.

시가는 론강으로 양분되어 있으며, 좌안의 구릉지에 구시가가 있다. 그 중심은 12∼14세기에 건립된 생 피에르교회이며, 청동 첨탑을 시내 어디에서나 바라볼 수 있다. 구시가에는 골동품상과 화랑 등이 있으며, 작은 분수와 처마마다 매달린 등에서 중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시의 남부에는 종교개혁 기념비가 있고, 1559년 종교개혁자 J.칼뱅이 선교사 양성을 위해 창설한 뒤 1872년에 종합대학이 된 제네바대학이 있다. 론 강에 걸려 있는 다리 중에서 호수 쪽에 가장 가까운 것이 몽블랑 교(橋)이며, 이 다리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는 몽블랑로(路)는 제네바의 대표적 상점가 중의 하나이다. 몽블랑교의 하류에는 루소의 동상이 있는 루소 섬이 있다.우안의 신시가에는 국제연맹의 본부였던 팔레데나시옹이 있으며(현재는 국제연합 유럽본부 UN), 이를 중심으로 국제노동기구(ILO)·세계보건기구(WHO)·국제적십자본부·국제통신연합 및 유럽 핵연구소 등이 있다.주요 산업은 시계·보석 정밀기계·화학약품·담배 등의 제조업이다. 시계공업은 스위스가 발상지로 1587년 이래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있으며, 대표적 산업이다. 또 시중에는 은행이 많아 스위스 금융업의 중심지이다.

레만 호수


면적 580㎢에 이르는 호수로 제네바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다. 알프스에서 흘러나온 강이 레만 호수로 이어지며 레만 호수는 다시 프랑스로 흐른다. 따라서 호수의 남쪽은 프랑스 영토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잇는 수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세 시대까지 많은 배가 드나드는 항구이기도 했다. 레만 호수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이 있어 크루즈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영국 공원
코르나뱅 역에서 몽블랑거리를 지나 몽블랑다리 건너편에 있다.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프랑스식의 다른 정원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연미를 살린 영국식의 정원이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한 공원 입구에는 1815년 제네바가 스위스 연방에 가맹한 것을 기념하는 국가기념비와 손에 칼과 방패를 든 두 명의 여자 동상이 서 있다. 영국공원 내에 있는 꽃시계는 많은 방문객의 눈길을 끄는 명물로, 제네바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시계 생산의 본고장임을 상징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초침을 가진 이 시계는 1955년에 제네바 관광청과 제네바 및 보주 시계생산조합의 협찬으로 만들어졌다. 문자반의 지름만 무려 5m이며 6,300여 종의 꽃들로 가득 차 있고, 계절마다 다른 꽃을 심는다.
                                                                                                     

                                                                                                                         브리그 Brig


깊은 역사를 가진 광장과 슈톡칼퍼 성이 있는 도시 브리그(Brig)는 심플론 패스 기슭에 위치한 양지바른 발레 주 고지대(Upper Valais)에 자리한다. 중요한 교차 지점에 위치한 덕에 브리그는 다양한 여정으로 향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시작점이 되고 있다. 뢰취베르그와 심플론에 자리한 스키 지역 및 하이킹 지역이 인접해 있으며 또한 알레취와도 가까운 곳에 있다. 더구나, 브리그 내에는 온천장이 있어 매력 있는 휴가지가 되고 있다.브리그 사람들은 카스퍼 슈톡칼퍼에 의해 17세기에 지어진 슈톡칼퍼 성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하 저장고, 아케이드, 궁전의 홀을 방문한 후, 그 다음에는 궁전 정원 장미 나무 아래에서 꿈을 꾸고, 수도원과 예수회 교회, 탑이 있는 브리그의 구시가지 경관을 즐겨보자- 그야말로 기분 좋은 일이다! 궁전 홀에는 18세기 파리에서 디자인한 벽지와 실크-페인팅이 있다.

                                                                                                 

                                                                                                                       베른 Bern


스위스의 수도(首都)이자, 베른주(州)의 주도(州都).

베른은 1191년 도시 건설자로 유명한 체링겐가(家)의 베르톨트 5세가 군사적인 요새로서 건설한 것이 기원이다. 1220년에는 자유도시가 되었고 1353년에는 스위스연방에 가맹하여 연방 내에서는 취리히와 함께 주도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1798년에는 프랑스에게 주권을 빼앗겼으나, 나폴레옹 몰락 후 다시 회복되고 1848년 스위스의 수도가 되었다.고전적인 도시의 모습은 고요의 나라 스위스의 대표적인 풍격을 지니고 있어 시 전체에 중세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구시가에는 연방의사당·정부청사·시청사·대성당·미술관 등 외에 만국우편연합·국제철도 교통사무국 등의 본부가 있어 국제적인 활동의 장소를 이룬다. 시의 중심 아레강 좌안의 절벽 위에는 1421년부터 150년 이상이나 걸려 건설된 고딕 양식의 뮌스터 성당이 있고,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바라다 보이는 높이 100m에 이르는 대첨탑이 솟아 있다. 구시가의 길모퉁이에는 16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11개의 분수가 있고, 17∼18세기에 만들어진 아케이드가 그대로 남아 있어 번화가를 이룬다. 그 근처에는 16세기에 재건되어 현재까지 베른의 상징이 되고 있는 거대한 시계탑이 있다.



                                                                                       이탈리아 ITALY


․ 수도 : 로마(Rome, 280만명)
․ 인구 : 약 5815만명 (2008)

․ 1인당 GDP : 3만 4059$ (2010년 IMF 기준)

․ 면적 : 301,230km2(한반도의 1.5배)

․ 주요도시 : 로마(ROMA), 밀라노(MILAN), 나폴리(NAPOLI)

․ 종교 : 카톨릭(98%)

․ 언어 : 이태리어, 소수민족어(독일어, 프랑스어 등)

․ 통화 : 1유로(EURO)=1,390원(2021.11)

고대의 화려한 전통과 유물을 간직하며, 현대의 최첨단 패션과 유행을 잘 융합시키고 있는 이탈리아는 유럽 대륙에서 지중해 쪽으로 장화처럼 뻗어 나와 있다.로마제국의 찬란한 역사와 르네상스의 화려한 꽃을 피운 곳으로 쥴리어스 시저 등이 활약한데 이어, BC 27년 아우구스투스가 왕위에 오른 것으로 시작된 로마 제국은 그 뒤 아프리카 북부는 물론, 중동과 영국에까지 손을 뻗치는 큰 제국을 이루었다.4세기 말에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아 세계 종교로 전파시켰다. 15세기에는 높아진 시민 의식과 귀족들의 비호로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으며, 5세기 서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분열된 국토는 1861년에야 통일을 보았다.

1,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승전국과 패전국의 자리 서게 됐으며, 2차대전 뒤에는 자동차 공업, 패션 산업, 관광 등으로 경제를 재건하였다. 그러나 공업이 발달해 부유한 북부 이탈리아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농업과 어업이 주를 이루는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가 공존하고 있다.

[지 리]

유럽대륙으로부터 지중해 쪽으로 긴 장화 모양을 하고 있는 길이 약 1,170㎞의 반도국가인 이탈리아는 반도와 시칠리아섬, 샤르데냐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면적은 301,245㎢로 한반도의 약 1.4배 정도되며, 산지와 구릉이 많고 평야는 전국토의 1/5정도 밖에 안된다.

지반이 불안정하여 지진이 잦으며, 시칠리아섬의 에트나산은 유럽 최고의 화산으로 화산운동을 하고 있는 분화구와 900여 개가 넘는 기생화산이 있다. 북쪽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접하고, 서쪽은 시칠리아․사르데냐 섬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유럽대륙으로부터 지중해 쪽으로 긴 장화 모양을 하고 있는 길이 약 1,170㎞의 반도국가인 이탈리아는 반도와 시칠리아섬, 샤르데냐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면적은 301,245㎢로 한반도의 약 1.4배 정도되며, 산지와 구릉이 많고 평야는 전국토의 1/5 정도 밖에 안된다.

[기 후]

이탈리아는 4계절의 변화가 분명하지만,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기후보다 약간 덥다. 그러나 북부지역은 아페닌 산맥의 영향으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의 평균기온은29℃, 겨울의 평균 기온은 9℃정도로 온난하다.강수량은 연평균 600-1,000mm로 북부지방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증가한다. 강수일수는 계절적으로 편중되지는 않았으나 주로 가을에 많이 내리며, 여름에는 햇볕이 강렬하나 습기가 없다.

[사회문화]

공용어는 이탈리아어며 국경 주변에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사용하는 곳도 더러 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관광지의 식당이나 상점, 호텔 등에서는 영어가 통용되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국교는 로마 카톨릭교도로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며 결혼식, 장례식등이 대부분 교회에서 행해진다.이탈리아는 지방별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던 까닭으로 지금도 각 도시별로 통일성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지방을 이동할 때마다 이탈리아의 특색있는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로마 ROMA]

Roma를 거꾸로 하면 amor! 사랑의 도시 '로마'는 한마디의 말로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소유한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는 옛 유적을 그대로 보전한 채 현대문명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소매치기와 좀도둑으로 악명이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매년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전설에 의하면 로마는 레무스와 쌍동이 형제로 태어나 암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레물루스에 의해서 팔리티노 언덕에 건국되었다고 한다.테베레강 하류에 접해 있으며, 대부분이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이탈리아의 수도로. 7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발전한 '영원의 도시'이다. 이탈리아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이며, 특히 바티칸은 카톨릭의 총 본산으로 카톨릭과 관계된 국제적인 연구․교육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로마의 주요산업은 관광업으로 연간 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고대부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육지, 수상교통의 중심지로 로마를 기점으로 이탈리아의 모든 교통이 발달되어 있다.로마는 여름에는 고온건조하고, 겨울에는 발칸 반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의 영향으로 가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 로마 평균기온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기온(°C)

8

8

11

12

17

20

23

23

21

17

12

9

평균강수(㎜)

81

71

68

66

50

33

15

25

68

114

111

96



콜롯세움(Colosseo)


AD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으로 수용인원은 6만명이었으며 기독교도의 박해장이기도 했다. 고대 로마 유적지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최대지름 188m, 최소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된 타원형 건물이다콜로세오라 불리우며, 이는 거대하다는 뜻으로 근처에 거대한 네로 상이 있어서 이름 지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가 장식되어 있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


고대 로마의 생활터전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당시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카피톨리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의 저지대로 바실리카 에밀리아, 원로원, 로물루스 신전, 라피스 니제르, 사투르누스의 신전, 베스타 신전 등 많은 고대 유적을 볼 수 있다.바실리카 에밀리아는 사법, 금융, 상업 등의 거래를 행하는 공공 건물로 410년에 서고트 족이 로마를 점령할 당시 화재로 일부가 소실된 건물이다. 원로원은 북서쪽에 있는 4층 건물로 바닥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진실의 입 (Bocca della Verita)


보카 델라 베리타 광장에 있는 것으로 보카는 입, 베리타는 진실을 의미한다.이 광장에 있는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의 입구 한쪽 벽면에 진실을 심판하는 입을 가진 얼굴 모양이 있는데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다.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영화 '로마의 휴일'로 더욱 유명하다.
스페인 광장 (Piazza di Spagna)


영화 '로마의 휴일'로 널리 알려진 이 광장은 137개의 스페인 계단과 트리니타 디몬티 교회의 종탑 및 오벨리스크가 이채롭다. 이 광장 앞거리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쇼핑가인 코르소 거리로 통해 있다. 광장에는 보트 모양의 17세기 대리석 분수가 있는데 베르니니의 아버지에 의 해 세워진 것으로 바르카시아라 불리운다. 여행자들에게 쉴 자리를 제공하며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광장 근처의 86번지에는 괴테, 보들레르, 리스트 같은 유명인사들에게 인기있던 그레코 카페가 유명하다.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분수 설계 공모전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당선된 니콜라 살비의 작품이다. 1732년에 착공하여 1762년에 완성되었으며, 분수의 아름다운 배경은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이루어져있다.로마시대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분수 중앙에 자리한 해마가 끌어올린 커다란 조개 위의 냅튠신과 트리톤신의 대리석 조각들은 브라치의 작품이다. 이 분수의 물은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샘을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는 전설을 갖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로 돌아오길 소원하며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스페인 광장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으며, 등뒤로 동전을 던져 한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을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는 전설이 있는 분수로 이곳의 동전은 정기적으로 수거하여 자선사업에 쓰인다.
카타콤베(Catacombe)


로마인의 지하 무덤으로 기독교 공인 전에 그리스도 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던 곳이다. 이 장소는 16-19C에 걸쳐 재발견되었으며, 귀족 가문의 소유였던 지하 매장실로부터 여러 층으로 된 긴 복도로 이어져 있다.카타콤베의 길이는 수 ㎞에 달하며, 로마 부근의 카타콤베은 지하통로의 길이가 500㎞이상 되기도 한다. 카타콤에는 원시 기독교 예술의 귀중한 재산이 되고 있는 조각, 그림, 형상들이 새겨져 있다.
바티칸박물관 (Musei Vaticani)


바티칸의 산 피에트르 대성당에 인접한 교황궁 내에 있는 미술관이다. 역대 로마 교황이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고문서·자료를 수장(收藏)하고, 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대화가에 의한 내부의 벽화·장식으로 유명하다. 창설은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 때 벨베데레의 정원에 고대 조각이 전시된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클레멘스 14세 치하인 1773년이다. 현재 본관은 피오 클레멘티노미술관·도서관·성(聖)유물관·회화관 등 많은 부분으로 나뉘고, 또 각실은 보르지아실(室)·라파엘로실·지도실이라는 특유의 명칭으로 불린다.
성 베드로 성당(Basilica di San Pietro)


가톨릭의 총본산으로서 유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황청의 산피에트로대성당 관리 성성(聖省)의 관리하에 있다. 그 역사는 깊어서 기원으로 말하면 성(聖)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6세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적 건축가들에 의해 전성기(全盛期)를 맞은 르네상스의 건축이념에 바탕을 두고 재건되었다.
 카스텔로마노 명품 아울렛 http://www.mcarthurglen.com/it/castel-romano-designer-outlet/it/
■로마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을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울렛으로 하루를 투자해 이곳으로 쇼핑을 하러 가는 관광객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오래된 중세시대의 성을 연상시키는 입구에서 작은 마을 같은 분위기의 상점까지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00여 개가 넘는 매장들이 의류, 잡화,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입점 되어있고 할인율도 30~70%나 되어 허니무너들과 여성 등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티볼리 Tivoli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 현 중부, 로마 현 중동부의 관광·휴양도시. 테베레 강 지류 아니에네 강폭포가 있는 곳에 있음. 인구 5만 2000명. 제지 · 화학공업이 성함. 고대부터 로마인의 별장지. 지금은 교회가 된 베스타신전, 에스테가 르네상스 양식의 별장,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루(鐘樓)가 있는 대성당이 있다.

로마 동쪽 약 30km 떨어진 티볼리는 과거 트라이아누스 황제와 아드리안 황제의 별장이 이었던 곳으로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경관에 오래 전부터 황제와 귀족들이 앞다투어 여름 별장을 세우는 등 피서지로 사랑받았던 곳이다. 특히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불면증을 티볼리에서 고치기도 했다. 하지만 중세에는 티볼리를 통한 외부의 로마 침략이 많았는데 이로 인해 이전에 세워졌던 별장 대부분이 훼손, 파괴 되었다.

빌라데스테


현재 티볼리의 명소로는 빌라 아드리아나, 그레고리아나 빌라, 빌라 데스 테가 남아 있는데, 그 중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빌라데스테가 가장 인기다. 이곳은 1550년 이폴리토 데스테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되지 못한 슬픔을 달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베네딕트회 수도원을 별장으로 개축한 것이다.


                                                                                                             나폴리 NAPOLI


이탈리아의 캄파니아(Capania)주의 주청소재지로 인구 약 107만을 가진 이탈리아 남부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이탈리아 내의 수도 로마, 상업 중심 도시 밀라노에 이어 제3의 도시인 나폴리는 농업 중심인 남부 지방과는 달리 수 공예 (카메오, 세라믹을 이용한 공예가 발달), 석유 화학, 조선 공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나폴리 항은 항구로서 제노바 다음 가는 이탈리아의 제2의 상업 항구로 1924년에 확정되어 건설된 후에 항만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남부 중심도시로 발달하면서 이탈리아 남부 각지에서 흘러 들어오는 인구에 의한 빈민문제등의 사회문제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대부분의 시가지, 항만시설이 파괴되었으나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과 17~18세기의 바로크 양식의 교회, 왕궁등은 복구되었다.

산타루치아 항구 (Proto di Santa Lucia)


나폴리의 민요 산타루치아로 유명한 항구. 원래는 한적한 어촌이었지만 지금은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황혼 무렵 항구를 바라보며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든 카스텔 델로보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서쪽으로 가면 해안선을 따라 시민광장(Villa Comunale)이 있다.
쏘렌토 SORRENTO
<돌아오라 소렌토로(Come back to Sorrento)>와 <오! 솔레미오(O sole mio)>는 모두 세계에서 가장 친숙한 가곡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폴리만의 색조와 친숙한 소음, 그리고 오렌지 숲으로 쌓인 소렌토는 역사와 예술을 자랑하는 평화와 고요의 천국이다.소렌토(Sorrento)는 소렌타인 반도의 북서쪽에 위치한, 나폴리 근처의 도시이다. 예전부터 나폴리와 인접한 해안 휴양지로 명성이 높았다. 소렌토의 수공예 목조품과 치즈, 올리브유, 리몬첼로(limoncello)라 불리는 지방 특산품을 제외하고 주요 산업은 관광업이다.절벽 위에 지어진 이 작은 도시에서 맑은 바다 빛과 카프리를 가로지르는 햇살을 비추인다. 토르쿠아토 타소(Torquato Tasso)가 여기서 태어났으며, 타란텔라가 여기서 춤을 추었다.
                                                                                                               

                                                                                                                 폼페이 POMPEI


화산재에 파묻힌 비극의 도시 폼페이(Pompei)는 서기 79년 8월재정 로마시대에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번영과 쾌락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당시 폼페이는 농업, 상업의 중심지였을 뿐 만 아니라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도 피서지와 피한지로 인기가 높 았다. 이러한 폼페이가 전성기에 멸망을 하였으므로 현재 발굴되 고 있는 자료들에서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BC 63년 대지진이 있었고, 기원 79년에는 베수비오 화산이 크게 폭발했다. 그때 강진과 더불어 분철한 화산재가 무려 1m 가까이나 쌓였다. 시민 중에는 교외로 도망치는 사람, 집안에서 피신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마침내 계속해서 내린 비 때문에 분출한 화산재와 용암이 응결하면서 거리 전체가 마치 찌는 솥이 되면서 모든 것이 매몰된 폼페이거리가 17세기에 도로 건설에 종사하던 건축가 몬타나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이에 대해 조직적인 발굴작업이 전개된 것은 1748년부터, 이 발굴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바 현재까지 3/5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런 발굴작업을 통하여 돌을 깔은 포장도로, 대리석과 벽돌로 지은 벽과 집, 수도와 목욕탕 등으로부터 당시의 훌륭한 도시계획과 소위 폼페이 양식을 알게 되었다.출토품 중에는 당시의 생활과 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많다. 우선 광장과 주요 도로를 중심으로 한 고대도시의 형태를 살펴보면 하수도와 목욕탕, 극장, 레스토랑, 공중 화장실까지 갖춰진 각종 시설이 현대의 도시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게다가 도로 역시 완전히 포장되어 있어 당시의 변영상을 엿볼 수 있다. 돈 많은 상인인 베티의 집은 상당히 부유한 편에 속한 집으로 입구에 들어서면 풀장이 있고, 양쪽으로 금고와 침실이 있다.파우노의 집은 2개의 회랑식 안뜰과 식당이 있는 부자 상인의 집으로 모자이크화가 걸린 거실도 있다.

화산폭발로 잊혀졌던 폼페이(Pompeii)


서기 79년 8월 번영하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전체와 2,000여명의 주민이 함께 화산재에 파묻히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비운의 도시이다.
원형 경기장 (Great Theatre)
폼페이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원형극장은 로마에 남아있는 콜롬세움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것은 BC 80년에 지어진 것으로 로마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여흥거리였던 노예 검투사들의 대결장으로 사용되었다. 원형으로 생긴 이곳은 폼페이의 전주민의 숫자인 20,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였다. AD62년 대지진후 복구작업을 했는데, 그때 쌓아올린 2미터 높이의 흉벽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리고 그 흉벽에 그려놓았던 사냥터의 모습과 컴투사들의 격투 모습의 그림들도 남아있다. 현재 발굴된 타원형 원형 경기장의 규모는 133미터, 102미터이다.


                                                                                                                아말피 Amalfi

나폴리에서 남쪽으로 70㎞, 살레르노에서 서쪽으로 20㎞ 지점에 위치한 물리니 계곡의 좁은 골짜기 안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에 산이 있고 남쪽으로 살레르노만(灣)을 마주하는 경승지이며, 기후도 온난하여 관광지·휴양지로 유명하다. 물리니 계곡에는 수력으로 가동되는 제지공장들이 있으며,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레몬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몬테카티니 Montecatini


인구 약 2만(1990). 14세기부터 염류천(鹽類泉)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처음으로 공중목욕탕을 세운 사람은 토스카나 대공 레오폴트 2세(1747~1792)였다. 주변에 약 250개의 호텔이 있으며, 염류천의 물은 수출한다. 교통수단은 철도 ·버스 외에 피사와 피렌체공항을 이용한다.

                                                                                                             '

                                                                                                           오르비에토 Orvieto


이탈리아 중부, 움부리아 지방 언덕 위의 도시. 에트루스크 시대에 생겼고 교황 직할지가 되었다. 교황과 인연깊은 사원 도시 오르비에토는 백포도주로 유명하다. 로마 북쪽 120km에 있는 오르비에토에 가려면 고대 로마의 거리 중 하나인 카시아 가도로 접어들어 나무들이 늘어선 구비진 길을 가다보면 확 트인 평야 한 가운데 불룩 솟은 오르비에토 도시가 눈에 들어 온다. 13~14세기에는 많은 교황의 은거지로서 오르비에토의 황금시대를 쌓았다.

두오모 Duomo
13세기 말에 착수되어 16세기에 완성되었다고 하는 이 두오모는 33명의 건축가와 152명의 조각가 그리고 68명의 화가와 더불어 90명의 모자이크사가 힘을 합쳤다고 한다. 정면 문에는 현대 이탈리아의 조각가 에밀리오 그레코의 부

조가 있어서 이 교회에 참여한 많은 예술가의 숨소리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부에는 프라 안젤리코와 루카 시녀렐리의 프레스코 화가 있다.


                                                                                                                아씨시 ( Assisi )

이탈리아 움브리아주(州)에 있는 도시. 성(聖)프란체스코 및 성녀(聖女) 클라라가 탄생한 주요 가톨릭 순례지의 하나이다. 로마제국 시대부터 번영한 시장도시이며,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는 굴곡이 심한 좁은 가로(街路)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중세시대 초기는 스폴레토 공작들의 지배를 받았으며 12세기에 자치지구가 되었다. 페루자와의 알력으로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는데, 그 후 교황령에 속하게 되었으며, 1860년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었다. 13세기에 건축된 로마 고딕양식의 성프란체스코 성당에는 지오토(Giotto)가 성 프란체스코의 일생을 주제로 그린 것을 비롯하여 조반니 치마부에(Giovanni Cimabue)와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 등이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다. 예배당이 1997년 지진으로 심한 손상을 입었으나, 부분적으로 복원하여 1999년 재건되었다.

산 프란체스코 교회 Basilica di San Francesco
2층으로 된 교회로 1230년에 완성된 아래층은 천장이 낮아 장엄하며 시모네마르티니의 <산 마르티노의 생애 La Vita di San Martino>, 치마부에의<성모자와 산 프란체스코 Madonna con Angeli e San Francesco>등의 뛰어난 중세 회화가 있다.계단을 더 내려가면 성 프란체스코의 묘가 있는 지하실이다. 이 교회 앞 광장에는 아치의 회랑이 몇 군데 있어 이 도심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산타 키아라 교회 Basilica di Santa Chiara
이탈리아 움브리아주(州) 아시시에 있는 성당. 아시시의 중심지인 코무네 광장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1257~1265년에 고딕양식으로 세워졌다. 단촐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성당으로 성 프란체스코의 사도였던 산타 키아라에게 바쳐졌다. 산타 키아라는 성 프란체스코의 성스러운 삶에 감명을 받고 그를 일생 동안 추종했던 인물이다. 지하실에는 산타 키아라의 미라와 유품들이 있고, 그녀의 동생이었던 아네스의 묘소도 있는데 그곳에서는 해마다 기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있다. 건물 외관은 분홍색과 하얀 돌이 번갈아 가며 가로 줄무늬를 이루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흰빛의 위엄을 자랑하는 데 비해 좀 더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색감을 나타낸다.


                                                                                                               피렌체 FIRENZE

이탈리아의 중부에 위치해 있며, 14-15C 메디치 가문의 후원에 힘입어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이다. 약 46만의 인구를 지닌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지인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식품․가구․의료․자동차부품등의 공업이 활발하며 상업이 매우 발달한 신흥공업 도시이자 교통의 요충지이다. 피렌체시의 중심지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예술작품과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하나의 박물관과 같다. 2차 세계 대전에는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도시전체가 파괴되었으나 여전히 아름다운 많은 볼거리와 학술, 연구기관이 있는 문화․예술의 도시이다.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 두오모 성당 (Duomo)
1292년에 착공되어 1436년에 완공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이다. 106m의 높이를 자랑하는 돔은 브루넬레스코작으로 1420년 착공후 14년간 이 건축 공사에 종사했으며 사후 1461년에 완성을 보았다.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의 벽체는 장관을 연출하며, 내부는 전성기 고딕 아치형 천정이 아치들로 받쳐져 있다.
미켈란젤로 광장 (Piazza Michaelangelo)
아름다운 중세풍의 피렌체 시가지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시가지의 풍경을 한 장의 사진에 실을 수 있는 곳이다. 두오모를 비롯해 베키오 다리가 인상적인 이 광장은 아르노강 남쪽 기슭의 언덕위에 조성되어 있다. 광장 중앙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복제품이 있다.
산타 크로체 (Santa Croce)
교회와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는 산타 크로체는 전형적인 피렌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교히당은 프란체스코파에 속하는 것으로 1294년에 착공하여 14C 후반에 완성되었다.예배당은 276개의 묘석들로 포장되어 있으며 벽을 따라서 호화로운 무덤들이 즐비해 있다. 남쪽으로는 바사리의 작품인 미켈란젤로의 무덤, 로셀리노의 성모자, 단테의 죽음을 기리는 기념비등 많은 조각품과 부조작품이 있다. 산타 크로체 박물관은 치마부에의 십자가 처형상이 소장되어 있으며, 대형 회랑은 브루넬레스코의 설계로 만들어 졌으며, 그의 사후인 1453년에 완공되었다.
베키오 다리 (Ponta Vecchio)
베키오 다리는 아르노강에 세워진 피렌체의 최고로 오래된 다리이다. 다리라고 말해도 여느 다리와는 달리 보석점과 금세공을 해서 파는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러기때문에 외관에서 보면 창문이 쭉 늘어서있는 벽과 지붕이 세워져있기때문에, 다리라고 한번에 알아보기 힘들다. 다리를 건너면서, 여느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며 상점가를 지나게 된다. 원어인 "폰타 베키오"라는 뜻은 "낡은 다리"라는 의미이다. 우피치 궁전과 강건너의 피티궁전을 연결하는 교량역활을 한다. 윗쪽으로는 귀족과 상인이 아래쪽에는 서민들이 거닐었다고 전해지며 16세기에는 금은세공하는 가게들이 즐비해있었다고 해서 당시의 번화된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공화주의의 이상이 명백히 표현된 절대군주의 살해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이 곳에 있는 것은 복제본이고 원본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에서 지암볼로냐(Giambologna)의 기수상의 듀크 코지모(Duke Cosimo) 1세의 초상화식 동상(1594년)과 사비니 여인의 강간(또는 강탈)까지, 이 곳에 있는 건축물에서 신화와 과거의 정치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광장 중앙에는 넵튠 분수가 있고 종교개혁을 주도하다 처형된 사보나롤라의 처형지라는 표식인 화강암도 보이며 저쪽으로는 베키오 궁전이 보인다. 최근 광장 밑에서의 발굴로 인해 중세의 건물뿐만 아니라 AD 1세기의 로마 건축양식도 있음이 알려졌다.
명품 아웃렛 THE MALL www.themall.it
프라다, 꾸찌, 아르마니, 팬디, 버버리, 살바토레 페라가모, 토즈, 베르사체,호간 등 명품 브랜드가 입점 되어 있으며 일반 매장보다 30~40%가 저렴하다.



                                                                                                             피사 PISA

유명한 '피사의 사탑'이 있는 도시로 토스카나 지방 피사주의 주도이다. 중세에는 해양도시 국가로 군사적, 상업적 입지가 강력했으나 1905년이후 피렌체에 정복되면서 소박한 도시로 변하였다. 피사는 피렌체와 제노바라는 강력한 라이벌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시달림을 받았으나 나름대로 화려했던 과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이탈리아 최고의 고딕 조각가 조반니 파사노의 고향이기도 하다.

피사의 사탑 (Duomo di Pisa)
현재 기울기 5。 30′로 매년 1mm씩 기울고 있다는 이 사탑은 지상으로부터 54.5m이다. 1174년에 착공하여 10m 높이에 이르렀을 때 지반이 내려 앉아 공사를 중단했다가 다시 계속 건설하여 1350년에 8층 탑으로 완공되었다.294개의 계단이 내부에 있으며 정상에 오르면 시가지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갈릴레이가 이곳에서 낙하 실험을 했다고 한다.
세례당 (Battistero)


12~14세기 때 건축된 건물로 두오모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설교 소리가 구석구석 전달되도록 음향 효과를 계산하여 설계했다는 이 성당은 내부의 직경이 35m이다. 니콜라 피사노의 작품인 설교단은 1260년에 건축되었다.
두오모 성당 (Duomo)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068년에 착공하여 50년동안 공사한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조반니 피사노의 설교단앞에는 갈릴레이가 진자의 원리를 발견한 계기가 된 '갈릴레이의 램프'가 있다. 사탑의 서쪽에 위치한다.


                                                                                                        친퀘테레 Cinque Terre

이탈리아 북서부의 리구리아(Liguria) 주에 위치하는 라 스페치아(La Spezia) 지방의 5개 해안 마을을 철도와 도보용 도로로 연결한 것이다. 5개 마을은 제노바에서 라 스페치아(La Spezia)로 향하는 중간에 있는 마을로 몬테로소(Monterosso al Mare)와 베르나차(Vernazza), 코니글리아(Corniglia), 메네롤라(Manarola), 리오마쪼레(Riomaggiore) 이다. 20세기에 이탈리아의 지역 중 외국의 관광객에 의해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곳으로 발견되었고 해안과 5개 마을, 주변의 언덕은 친퀘테레(Cinque Terre) 국립 공원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볼로냐 Bologna

로마의 길 중 하나인 아에밀리아 가도가 건설되면서 그 연변의 중심 도시로 5세기까지 번영하였다, 그 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은 11세기에 문화, 학문의 일대 중심지가 되었다. 전 유럽에서 학생이 모여들어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도 발달하였다.지리적으로 북부와 중부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북유럽으로부터는 고딕 문화, 동방으로부터는 비잔틴, 교황이 있는 로마에서는 교회의 힘을 받아들여 다양한 사상과 예술이 볼로냐에 유입되었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이것들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며 동화해 갔다. 현재는 전통적 수공업이나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상공업 도시로 식품, 가구, 구두 등의 전통적 공업과 함께 기계, 금속, 정밀기계 등도 발전하고 있다.

산 페트로니오 교회 (S.Petronio)


고딕 양식으로 14세기 말에 짓기 시작했으나 지금도 미완성이다. 중앙입구 주위를 장식하는 조각은 초기 르네상스 걸작의 하나로 <성모와 그리스도>가 가운데에, 좌우로 <성 페트로니오>, <성 암브로조>가 있다. 15세기 중반에 시에나파의 야코포 데라 퀘르치아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 12년에 걸쳐 제작되었다고 하는 대작이다.
포데스타 궁전, 엔초 왕 궁전 (Palazzo Podesta)


이 궁전들에는 볼로냐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 중세의 자유도시 볼로냐는 독립과 자치를 위해 전쟁을 자주 하지 않을 수 없었다.포데스타 궁전은 신성로마 제국 황제가 임명한 도시 장관의 거처였던 곳으로 볼로냐의 시민이 프리드리히 1세의 임명으로 온 장관을 1164년에 축출함으로써 이곳에 자유도시 볼로냐가 탄생했다. 시민이 선출한 대표가 집무를 행했던 장소이다.


                                                                                                              베니스 VENICE

바다로 이어지는 석호 위에 발달한 '물의 도시'로 역사 깊은 항구도시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9-15C에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했던 베네치아는 동․서양의 물품, 문화의 합류 지점이었다. 170여 개의 운하와 400여 개의 다리가 115개의 섬들로 연결하여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다. 이탈리아 북동부 아드리아 해 북안에 위치해 있으며, 유리 세공업으로 유명한 무라노 섬, 해수욕장․ 카지노․국제 영화제로 유명한 리도 등이 있다. 공화국 번영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베네치아는 로마, 피렌체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관광지로 명성이 높다.

산마르코 광장, 성당(Piazza de San Marco, Basilica San Marco)


길이 175m, 폭 80m의 대리석으로 구성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 마르코 광장 주변에는 회랑이 설치되어 있으며, 유명한 카페와 고급 상점들이 즐비해 있다. 산 마르코 성당은 비잔틴과 서방 양식의 혼합 구조로 건축되었으며, 1063-1073년에 산 마르코의 무덤을 덮는 교회로 세워졌다.황금의 교회로 이름붙여진 성당으로 르네상스와 17C에 변형이 가해졌으며 다양한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특히 대리석과 모자이크의 아름다운 장식이 유명하다.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베네치아에서 가장 멋진 건물로 AD825년으로 추정되는 건물자리에 12C에 재건된 것을 바탕으로 14-16C에 완전히 개조되었다. 건물 외관은 백색과 분홍 대리석의 아름다운 문양으로 그멋을 더해주고 있으며, 회랑은 개성있는 기둥받침을 지닌 36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에 포고문을 게시했던 '게시의 문'인 중앙 현관은 고딕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뜰은 르테상스 식의 멋진 구성과 조각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으며, 실내는 황금 계단, 안티콜레지오, 접견실, 투표실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운하 (Canal Grande)


베네치아시 중심을 역S자를 그리면서 관통하는 길이 3.8km의 넓은 수로로, 대운하를 따라 12-18C에 걸쳐 세워진 대리석 궁정과 산 시메오네 피콜로 교회, 페사로 궁전, 고딕 건축의 카피사니 궁, 페사로 궁이 있으며, 오른쪽 연안에는 코르테르 델라 카 그란데 궁, 코르네르 스리넬리 궁, 카 도로, 그리마니 궁이 있다. 대운하를 따라 아름다운 건물을 누비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산 마르코 성당을 출발 하는 곤돌라나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관광할 수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흰 석조 다리, 리알토 다리(Rialto Bridge)
대운하 서쪽의 한 부분을 연결하는 리알토 다리는 베니스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16세기에 지어진 하얀색의 석조 다리로 원래 목조 다리였으나 석조 다리로 재건되었다.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과 설계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Antonio da Ponte와 그의 조카, Antonio Contino가 디자인하여 건축하였다.

맨 밑은 아치로 되어 있어 그 밑으로 배들이 지나다니고 다리에는 두 줄의 쇼핑 아케이드와 세 줄의 보행자 통로가 있으며 아치형의 기둥들이 삼각의 기둥을 떠받치고 있다.


                                                                                                               베로나 VERONA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라는 중세적 매력과 세련된 도시 분위기를 함께 갖춘 이탈리아 북동부쪽의 도시 베로나는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매력적인 곳이다. 아디제(Adige) 강이 시내 북서쪽을 휘감고 유유히 흐르고 있다. 베로나의 주요 관광명소로는 원형경기장 아레나, 줄리엣의 집, 에르베 광장, 마치니 거리, 베키오 성, 성 피에트로 성과 로마극장, 아나스타시아 교회 등이다.

베로나의 명소,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이었던 아레나에 이어 베로나의 두번째 명소라면 바로 줄리엣의 집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줄리엣의 집이 이곳이라는 설정하에 꾸며진 이곳에는 로미오가 줄리엣을 위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던 발코니를 재현해 놓았고, 집 앞마당에는 쥴리엣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참고로 집 앞마당까지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나, 발코니가 있는 건물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아레나(Arena) 원형경기장


베로나 도시 한 가운데에 위치한 원형 경기장, 아레나(Arena)는 베로나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자 유적지로 AD 30년경에 세워졌다. 원형 경기장의 크기면에서는 로마의 콜로세움, 카푸아의 원형경기장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3번째로 큰 원형 경기장이다. 베로나 아레나는 길이 139m, 폭 110m로 최대관중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밀라노 MILANO

우리에게 밀라노 패션쇼로 익숙한 밀라노는 패션뿐만 아니라 음식, 오페라,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두오모 성당과 유럽 오페라의 중심인 스칼라 극장,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피에타로 유명하다. 롬바르디아주의 주도로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최대의 상업, 공업 중심지로 이탈리아의 경제적인 수도라고 할 수 있다.밀라노의 중심가는 두오모 광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 거리로 일컬어지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와 연결되어 있다. 이 곳은 거대한 아케이드로, 전통있는 유명한 카페와 부티끄가 줄지어 있다.

밀라노 대성당, 두오모 광장


시내 중심에 있는 이 광장을 축으로 1-2km 안에 관광지가 집중되어 있으며, 시당국의 계획으로 1862년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가 조성했다. 중앙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기념비가 서 있고, 밀라노 시민의 휴식 장소로 애용된다. 두오모 대성당은 3159개의 거대한 조각 군으로 장식되어 있고 100m 높이의 유리첨탑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 길이 157m, 높이 108.5m로 바티칸의 산 피레트로 사원에 이어 세계적으로 2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스칼라 극장 (La Scala)


1778년에 세워졌으나 제 2차 세계 대전때 파괴되어 1946년에 재건되었다. 19C 이후로 푸치니, 로시니, 베르니등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들의 작품이 초연되었다. 3,000여명을 수용할 수 내부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으며 화려한 상들리에가 늘어져 있어 더욱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오페라 시즌은 12월 초부터 이듬해 7월초까지이며, 9월부터 11월까지는 콘서트나 발레가 공연된다.
스포르체스코 성 (Castello Sforzesco)


두오모 광장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밀라노의 영주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명령에 의해 다빈치, 브라만테등의 참여로 1466년에 완공되었다. 현재 성의 내부는 고고미술관과 고고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미켈란젤로가 임종하기 3일 전까지 작업을 했고 지금은 미완성으로 남겨져 있는 대작 <론다니니의 피에타>가 보관되어 있다.
※ 밀라노 인근 명품 아웃렛 / 세라발레(McArthur Glen Designer Outlets Serravalle)
■찾아가기 : 밀라노 중앙역에서 기차 이용 후 아르콰타 스크리비아(Arquata Scrivia)역에서 하차(소요시간 1시간20분) 후 세라발레 아울렛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소요시간 15분)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 같은 분위기이며 입점된 브랜드는 명품 브랜드보다는 캐주얼 브랜드 (시슬리, 푸마, 아디다스, 디젤, 리바이스, 라코스테, 만다리나 덕 등)로 이루어져 있다.
※ 밀라노에서 방문 가능한 스위스 명품 아웃렛 폭스타운 (Fox Town)
■찾아가기 : 밀라노 중앙역에서 기차 이용 후 카이소(Chiasso)역에서 하차(소요시간 1시간) 후 카이소 역 버스 정류소(LA POSTA) 노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소요시간 30분)

■스위스에 위치한 백화점처럼 만들어진 아울렛이며, 밀라노에서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명품 브랜드(프라다, 디올, 버버리, 살바토레 페레가모, 베르사체, 구찌, 아르마니, 팬디)에서 캐주얼 브랜드(나이키, 푸마, 디젤 등)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 되어 있다.


                                                                                                               시칠리아  Sicilia


지중해 최대의 섬인 시칠리아섬과 주변의 에가디·펠라지에·판텔레리아·리파리 등의 섬들로 구성된 이탈리아령(領) 자치주이다.'흰 대리석'이라는 뜻의 시칠리아는 역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예로부터 그리스·로마·페니키아·아랍 등 '외세'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려왔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의 공화제 이행(移行)에 따라 자치주가 되었다. 트라파니·팔레르모·메시나·카타니아·엔나·아그리젠토·라구사·시라쿠사·카타니아의 9개 현이 있고, 주도(州都)는 팔레르모이다.에트나산 기슭에 위치한 항구도시 카타니아는 이탈리아 남부의 문화적 중심지로서 로마극장 유적, 11세기 노르만 시대의 양식을 간직한 성(聖)아가타 대성당, 1232년 프리드리히 2세가 건설한 우르시노성(城) 등이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시라쿠사 Siracusa

시칠리아 섬 동해안 남부에 있는 도시. B.C. 733년경 그리스의 코린토스 시가로 세운 식민도시에 기원을 두고, B.C. 5세기 겔론(Gelon) 및 히에론 2세(Hieron Ⅱ) 때에는 섬 중에서 제일의 부(富)와 권력을 자랑했다. 현재의 돔은 B.C. 5세기 전반의 아테네 신전을 개조한 것으로, 도리스 식의 원주는 지금까지 대체로 남아 있다. 그 외에 아폴로 및 아르테미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전 유적, 고대극장 등 많은 유적이 있다.

그리스 극장 Teatro Greco


기원 전 5세기의 사라쿠사 전성기에 지어졌으며 직경 130m나 되는 크기로 보존상태도 좋다. 반원형의 그리스 극장은 사방에서 무대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극장 뒤 언덕에 그리스인들의 묘소가 있다.
아레투사의 샘


구시가지 동쪽 해변강 있는 작은 담수 연못이다. 연못에는 파피루스가 자생하고 백조가 노닌다. 이 샘에는 요정인 아레투사가 강의 신 아르페우승게 쫓겨나 샘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뻗은 해변가 산책로 Foro Vittorio Emanuele 2도 좋다.


카타니아 Catania


시칠리아 섬 카타니아만 연안 에트나 산 기슭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BC 8세기에 그리스인이 만든 식민 도시로, 중세에는 전쟁과 에트나 화산의 분화, 지진 등으로 여러 차례 파괴되었다. 이탈리아 정부의 남부 개발 정책으로 시(市) 북부에 공업단지가 이루어져 공업도시로서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면직·견직물·통조림 공업이 활발하다. 남부의 문화적 중심지로서 대학과 화산학연구소가 있으며, 문화재로서는 로마 극장 유적, 11세기 노르만 시대의 양식을 간직한 성(聖)아가타 대성당, 1232년 프리드리히 2세가 건설한 우르시노성(城) 등이 있다.



팔레르모 Palermo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에 있는 도시로, 인구는 675,018명(2006년 기준)이다. 시칠리아 주의 주도이며, 티레니아 해에 면하는 항구도시이다.

팔레르모는 기원전 8세기에 건설된 오래된 도시이다. 처음에는 페니키아의 식민도시였고, 그 후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9세기 아랍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번창하기 시작하였고, 12세기 시칠리아 왕국이 성립된 후 그 수도로 더욱 발전하여 유럽의 중요한 문화중심지 중 한 곳이 되었다.중세 시대에 번영을 누렸던 흔적이 시 곳곳에 남아 있으며 특히 아랍풍의 건물 양식이 눈길을 끈다.


콰트로 칸티 Quattro Canti
콰트로 칸티는 ‘사거리’라는 의미이다. 마쿠에다 거리와 에마누에라 거리가교차하는 모퉁이는 스페인 바로크 양식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곡선을 그리는 주택의 벽은 이곳 수호성인 스페인 왕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분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노르만 왕궁 Palazzo dei Normanni
아랍인이 축조하고 노르만인이 수리, 보수한 아랍 노르만 풍의 건물로 현재는 회의장으로 쓰이고 있다. 입장시 관리인의 엄중한 체크를 받는다. 노르만 왕들의 거실 부분 가운데에서도 루체로 왕의 방 Sala di Ruggero은 꼭 둘러본다. 침실이었던 이 방의 벽화는 수렵 장면과 식물 등의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 되어 있다.
팔레르모 대성당
12세기 말에 건축된 시칠리아 노르만 양식의 교회로 규모가 크다. 두 개의 고딕 양식의 아치가 대성당과 종루를 연결한다.중앙의 둥근 지붕과 건물의 상부를 장식하는 섬세한 조각이 특이하다. 여러번 개축과 증축을 반복했기 때문에 교회 원래의 모습은 알기 어렵다. 내부에는 팔레르모를 다스렸던 왕들의 묘가 있다.
팔라티나 예배당 Cappella Palatina
노르만 왕 루제로 2세가 1130년부터 13년의 세월에 걸쳐서 지은 예배당이다.왕궁의 현관으로 들어가 오른쪽에 있는 넓은 계단을 올라가서 막다른 방이다. 예배당은 벽, 제단 모든 것이 금색을 주로 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라벤나의 모자이크에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천장과 기둥에는 아랍풍의 영향이 남아 있다.


몬레알레 Monreale


시칠리아섬의 팔레르모 남서쪽, 콘카도로 평원을 내려다보는 카푸토 산의 해발고도 301m의 구릉지에 있다. 시가는 베네딕토파의 몬레알레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이 수도원은 노르만인(人) 윌리엄 2세가 노르만 양식에 아랍적 특성을 가미하여 건설한 것이나, 지금은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1174년에 윌리엄 2세에 의해 건축된 대성당은 대표적인 노르만-시칠리아 건축물로, 보난노 피사노가 만든 훌륭한 구리문이 있으며, 내부는 독특한 비잔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몬레알레 근처 산마르티노델레스칼레 마을에 있는 베네딕토회 소속의 유명한 산마르티노 대수도원은 6세기에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세워 1346년에 복원되고, 1770년에 확장되었다. 인근에는 200여 개의 쌍으로 된 회랑이 있다.

몬레알레 대성당 Monreale Cathedral


팔레르모에서 남서쪽으로 약 8km 떨어진 몬레알레 마을에 위치한 성당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12세기에 세워졌으며, 몬레알레 성당 천장에는 아담과 이브, 천지창조 등의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다. 모자이크 면적이 6,000㎡에 이르고 성당 전체에 걸쳐 있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그리젠토 Agrigento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주(州)의 도시. 고대 그리스의 가장 중심적인 빌딩 군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는 잔재들만 뒹굴고 있는 지역. 7.5m의 인간의 모습을 한 기둥이 쓰러져있으며 원형은 고고학 박물관에 수용되어 있다. 신전의 계곡 지역은 기원전 582년에 건설된 그리스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시칠리아 섬의 드라고 강(江)과 산비아조 강(江)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의 사면에 있다.BC 582년에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건설되었으며, BC 5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어 교역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BC 406년에 카르타고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곧 복구되었다. 제1차 포에니전쟁에서 로마제국과 카르타고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BC 210년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로마제국에 정복당했다. 로마제국이 지배하면서 농업이 발달하고 근처에 있는 황 광산의 개발로 번창하게 되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비잔티움인(人)에게 넘어갔으며, 828년에는 사라센에게 점령당해 식민지가 되었다. 1087년 시칠리아왕국의 백작인 노르만족(族) 정복자 로제르 1세에 의해 함락 당했으며, 그에 의해 라틴 주교관구가 수립되었다. 중세 초기부터 1927년 이전까지는 지르젠티라고 불렸다.

신전의 계곡 Valle dei Templi

물이 흐르는 계곡이 아닌 신전들이 모여 있는 계곡이다. 시칠리아가 그리스의 지배하에 있을 때 계곡 이곳저곳에 고대 그리스 신전 20여 개가 만들어졌다. 건물들의 상태는 양호하지 않지만 이 일대는 시칠리아에서 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20여 개의 신전 중 콘코르디아(Concordia) 신전의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이 신전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도리아식 건축물인데, 시칠리아가 기독교 화했을 때 교회로 사용되었던 덕분에 보존될 수 있었다. 그밖의 신전은 많이 파손되어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상태이다. 헤라클레스 신전은 신전의 계곡에 가장 먼저 들어선 건물로 기원전 6세기 말에 만들어졌다. 원래는 38개의 기둥이 있었으나 지금은 8개만 남아 있다. 제우스 신전과 헤라 신전도 있다.



                                                                                                                 바리 Bari

이탈리아 남부 프리아 주의 주도(州都). 로마시대에 바이륨(Bairum)이란 이름의 항구도시로 번창. 중세에 들어 성 니콜라우스의 토지로 유럽 유수의 순례지가 되었다. 중요한 성당은 산 니콜라(1087~1132)로 로마네스크 양식에 의한 대건축 석조의 사교좌(1098)가 특히 유명. 대성당도 로마네스크 양식이나 후세에 개수한 부분이 많으며 11세기의 에크술테트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산 그레고리오 성당 주회화관(州繪畵錧) 등이 있다.


                                                                                                                     타란토 Taranto

BC 8세기에 그리스인(人)이 처음 건설하여 타렌툼(Tarentum)이라고 하였다. 그 후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 마그나그라이키아의 주요 도시가 되었다. BC 272년 로마인이 정복하였고, 5∼10세기에는 지중해 교통의 요지로서 동(東)고트·비잔틴·랑고바르드·사라센 등의 지배를 받았다. 1063년 이후 나폴리 왕국령이 되었으며, 이탈리아 왕국의 지배하에서는 중요한 군항으로서 특히 아프리카 진출의 기지가 되었다.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군항으로서의 중요성이 줄어들었으나 1960년대에 남부 경제개발의 거점도시가 되어 국가자본 이리(IRI)에 의해서 이탈리아 최대 생산 규모의 제철공장이 건설되었으며 관련 공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그 밖에 또한 병기·조선·화학·벽돌·식품 공장 등이 있다. 시가는 섬에 있는 구시가와 본토에 있는 신시가로 나뉜다. 구시가는 아라곤공(公)의 성(1480년 재건), 이슬람풍의 고딕 대성당(11세기) 등이 남아 있으며, 좁은 길을 끼고 가옥들이 밀집해 있다. 박물관은 고대 그리스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